지난 수년간 세계 철강업계에는 설비 증설의 광풍이 몰아쳤다. 2006년 세계 1ㆍ2위 업체 미탈과 아르셀로의 합병으로 탄생한 ‘공룡’ 아르셀로미탈이 압도적 격차로 조강생산량 1위 자리를 꿰차자 너도나도 몸집 불리기에 나선 것이다. 때마침 세계 경기 호황에 힘입어 수요까지 폭증하면서, 철강업계의 생산규모 확대 전략은 성공의 방정식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미탈리즘’으로 표현되는 팽창 패러다임은 글로벌 금융위기와 함께 날개가 꺾였다. 여기에 유로존 재정위기, 신흥개도국의 성장둔화 등 악재가 꼬리를 물면서 철강산업은 좀처럼 회생의 발판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미탈을 비롯한 세계 주요 7개 철강사의 지난해 3분기 영업이익률은 3.7%로, 전년 동기(6.4%)에 비해 거의 반토막이 났다. 작년 평균 강재 가격 역시 톤당 813달러로 전년(723달러) 대비 11.2% 떨어졌다
급변한 상황은 현재 철강사들의 생존마저 위협하고 있다. 광풍의 진원지인 미탈 자신부터 매서운 구조조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미탈은 최근 “주식과 전환사채 35억달러어치를 매각해 6월까지 부채 규모를 170억달러 수준으로 낮추겠다”고 밝혔다.
현재 미탈의 순부채 규모는 232억달러. 앞서 미탈은 차입금 상환을 목적으로 2011년 하반기부터 22억2,300만달러의 자산을 처분했다. 여기엔 철강 서비스를 담당하는 스카이라인스틸 매각(6억5,000만달러) 등 철강부문 핵심 자산도 포함돼 있다. 미탈은 행정ㆍ지원부문 기능인력 30%를 줄이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인도 타타스틸이 지난해 말 영국 내 공장(12개) 폐쇄 및 감원(900명) 계획을 발표하고, 미국 US스틸이 세르비아 공장을 매각 하는 등 구조조정은 전방위적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국내업체들도 예외는 아니다. 포스코는 지난해 SK텔레콤 등 보유주식을 팔아 5,800억원의 긴급 자금을 수혈한 데 이어 지금도 계열사 통폐합 및 매각을 통한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동국제강은 포항제강소 1후판공장(100만톤)을 폐쇄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신통치 못하다. 가장 큰 이유는 대규모 증설 경쟁의 여파가 너무도 커서다. 2006년 15억톤이었던 전세계 조강생산량은 지난해 20억톤을 넘어섰으며, 올해도 중국 인도 등을 중심으로 5,000만톤의 신규설비가 가동될 예정이다. 수요는 그대로 혹은 줄어들고 있는데 생산능력은 오히려 확장되다 보니 아무리 자산을 팔아도 수익을 맞추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박현욱 HMC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은 “높은 실업률에 시달리는 각국 정부가 고용 유지를 위해 저금리로 대응하는 바람에 한계기업이 퇴출되지 않은 것도 구조조정을 더디게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일례로 미탈은 프랑스에 소재한 용광로 2기를 폐쇄할 방침이었으나 프랑스 정부가 국유화를 하겠다고 위협하자 곧바로 꼬리를 내렸다.
이민근 포스코경영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이제 철강산업의 경영전략은 ‘성장 추구’에서 ‘생존 우선’으로 확실히 방향을 틀었다”며 “그나마 사정이 나은 동남아, 남미 시장 등의 수요를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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