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경·국카스텐·천계영… 예술가들이 선호하는 뮤지션일렉트로닉·어쿠스틱 오가는 극단적 음악실험에 평단 호평"음악은 건축과 닮아 질서있는 혼돈 보여주고 싶어"
소설가 은희경은 이이언(38ㆍ본명 이용현)의 음악을 가리켜 "파괴할 만한 아름다움을 지녔다"고 했다. 만화가 천계영은 "느리고 외롭고 오묘하고 아름다운 그의 곡들을 듣다 보면 세상이 너무 완벽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국카스텐의 리더 하현우는 국내 인디 밴드 중 가장 독특하고 고유한 에너지를 지닌 밴드로 그가 이끌었던 2인조 밴드 못(MOT)을 꼽았다.
이이언의 음악은 대중보다 동료 뮤지션, 작가, 평론가들이 더 선호한다. 2004년 발표한 못 1집 '비선형'은 2007년 한 음악웹진이 대중음악 전문가 52인의 추천을 집계해 선정한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에서 59위를 차지했다. 이후 발표한 못 2집 '이상한 계절'(2007)과 지난해 초 발표한 솔로 1집 '길트-프리', 최근 내놓은 EP(미니앨범) '리얼라이즈'도 평단의 호평을 받은 수작들이다.
못의 등장은 국내 대중음악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줬다. 인디 팝과 록, 트립합, 재즈, 일렉트로닉, 인더스트리얼 등을 포함하면서도 어느 한 장르에 속하지 않는 독창적인 음악이었다. 컴퓨터의 디지털 음으로 채운 솔로 1집과 어쿠스틱 편성을 내세운 EP는 극단을 오가는 음악적 실험의 결과물이다. "밴드에서 컴퓨터 음악으로, 거기서 또 어쿠스틱으로 간 것은 본질을 둘러싼 외피, 즉 방법론을 변화시키면서 본질을 잘 드러내는 방법이지 않을까 생각해서 했던 시도들입니다."
24일 서울 문배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아이큐 163인 멘사 회원''연세대 전파공학과 출신'이라는 설명이 절로 떠오를 만큼 지적인 학자와 섬세한 예술가의 면모를 풍기는 사람이었다. 내향적이고 조용한 목소리로 전하는 이야기에는 단단한 확신과 의지가 엿보였다. 자유분방한 로커가 아닌 사려 깊은 건축가에 가까웠다.
"음악 자체가 건축과 닮은 것 같아요. 아무렇게나 만들면 무너진다는 점이 비슷하죠. 무너지지 않는 균형을 갖춰야 해요. 무너질 것처럼 보이지만 무너지지 않는 것을 제 음악에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질서 있는 혼돈의 느낌, 의도적으로 잘 제어되는 혼돈, 심지어는 제어되는 무작위 같은 것을 말이죠."
1980년대 286 컴퓨터 시절부터 악기와 디지털 음악의 결합을 시도했던 그는 악기 연주와 작곡,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자유자재로 오갈 수 있는 '공학도 뮤지션'이다. 청소년기에는 메탈리카와 메가데스, 판테라 등 스래시 메탈에 푹 빠졌고 이후 얼터너티브 록, 재즈, 트립합, 일렉트로니카 등 다양한 장르로부터 음악적 영감을 얻었다. 음악 공부도 쉬지 않았다. 2008년 입학한 한국예술종합학교(뮤직테크놀러지 전공)는 그에게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줬다. "뮤직테크놀러지를 공부하며 오래 전 꿈이었던 프로그래밍을 다시 음악과 접목시키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됐어요. 그때 남들이 할 수 없는 음악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이언은 타협을 모르는 음악인이다. "경제적인 이유만으로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싶지는 않아서 직장도 갖지 않았다"고 했다. 건강을 해칠 정도로 음악에만 몰두해온 삶을 바꿔보고자 최근엔 예술 창작을 하는 지인들에게 조언도 구했단다. 결론은 규칙적인 작업과 일상 생활의 조화였다. 설계도에 따라 치밀하게 만들던 제작 방식도 연주자의 의견을 모아 종합하는 방식으로 선회했다. 이성과 감성의 조화를 추구한 새 앨범에는 은유적으로 삶의 균형을 찾아가려는 예술가의 분투가 담겨 있다.
모든 예술가가 그렇듯 대중과의 소통은 그에게도 풀리지 않는 숙제다. "마이너리티를 의도한 게 아니라 제 성향이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흐른 겁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들어줬으면 하는데 아쉽게도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래도 은희경 작가가 제게 해줬던 말처럼 '중요한 소수에게 인기 있는 음악'이라는 게 격려가 되기도 해요."
고경석기자 kave@hk.co.kr
김지수(한양대 영문4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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