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아 임신을 계획하는 부부들이 많다. 임신을 준비하거나 임신 중인 여성들은 특히 약에 민감하다. 임신인 줄 몰랐을 때 먹은 약 때문에 아기가 괜찮을까 노심초사하거나 임신한 상태에서 감기 같은 증상이 있어도 무조건 약을 안 먹고 버티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용법 용량 제대로 지키면 임신 중이라도 복용할 수 있는 약이 있다. 막연한 편견이나 두려움 때문에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는 게 오히려 태아에게 더 해로울 수 있다고 전문의들은 조언한다. 임신 중 필요한 경우 먹어도 되는 약과 주의해야 할 점을 정리했다.
수정 1주까진 별 영향 없어
예비엄마가 먹은 약이 뱃속의 아기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는 건 수정란이 자궁 내막에 착상된 다음부터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된 뒤 대략 1주는 지나야 착상이 되기 때문에 그 이전까지는 엄마가 약을 복용한다고 해도 아기에게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 착상 전후인 임신 초기엔 감기몸살이나 소화불량 같은 증상이 종종 나타나 많은 여성들이 임신 사실을 알기 전 감기약이나 소화제를 먹는다. 먹고 나서야 임신을 확인하고 불안해하곤 하는데, 복용 시기를 따져보면 크게 우려할 필요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단 수정란이 착상된 다음 장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하는 수정 후 3~8주는 태아가 약에 가장 취약한 시기다. 특히 알코올이나 담배, 페니실라민, 리바비린, 와파린 등 태아에게 기형을 일으킬 수 있다고 알려진 성분에 대해선 이때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손과 발을 비롯한 장기들이 거의 완전히 형성된 수정 15주 이후부터는 다시 약으로 받는 영향이 줄어들면서 약 때문에 기형이 생길 가능성은 낮아진다. 그러나 일부 성분이 태아의 장기 기능이나 뇌 발달에는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약을 먹기 전엔 반드시 의사와 상담해야 한다.
해열제는 아세트아미노펜으로
열감기나 근육통, 오한이 함께 오는 독감은 자칫 그대로 두면 폐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임신부가 폐렴이 생기면 태아에게 가는 혈류와 산소량이 줄어 치명적이다. 따라서 임신 중 고열이 나면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의 해열제를 복용하면서 내과와 산부인과 전문의의 협진을 받는 게 좋다. 또 임신 중에는 호르몬의 영향으로 머리 쪽 혈관이 확장되면서 혈류가 증가해 두통이 생길 수 있다. 진통제보다는 신선한 공기를 자주 마시고, 두피 마사지를 받거나 충분히 자면서 증상을 완화시키는 편이 바람직하지만, 임신 후반기에도 심한 두통이 계속되면 임신중독증이나 뇌에 문제가 없는지 전문의에게 확인 받을 필요가 있다.
임신부를 가장 많이 괴롭히는 증상 중 하나가 바로 변비다. 호르몬 때문에 위장관 운동이 줄거나 자궁이 압박을 받거나 철분제 복용에 따른 부작용 등이 원인이다. 물이나 요구르트, 고구마처럼 섬유질이 많은 식품을 자주 먹었는데도 나아지지 않으면 치질로 진행되지 않도록 변비약을 처방 받도록 한다. 수산화마그네슘, 락툴로오스 같은 성분의 약은 장 내에서만 작용하기 때문에 임신 중에 사용해도 된다. 처방 받지 않은 변비약은 온몸으로 흡수돼 조기 진통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
입덧이 심하거나 뱃속이 계속 더부룩하면서 속이 쓰려 제대로 밥을 못 먹는 임신부는 수크랄페이트나 라니티딘 성분으로 이뤄진 제산제를 처방 받을 수 있다. 단 오메프라졸, 비스무트 같은 성분은 임신 중 복용이 금지돼 있으니 소화 관련 약은 성분을 꼭 확인해야 한다. 태아가 자라면서 자궁을 압박하기 때문에 임신 중엔 소변이 자주 마렵다. 그러나 빈뇨 증상과 함께 방광염이 생기면 조기 진통 위험이 있기 때문에 암피실린, 아목시실린, 세팔로스포린 같은 항생제로 치료하는 게 좋다.
초산인 경우엔 임신 32주 후부터 배에 빨간 반점이 돋으며 가려운 증상이 종종 생긴다. 심한 부위엔 칼라민 로션을 바르거나 클로르페니라민 같은 항히스타민제, 프레드니솔론 같은 스테로이드계열 약을 단기간 처방 받으면 된다.
만성질환 임신은 복약계획부터 꼼꼼히
만성질환을 앓는 여성은 임신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다. 약을 먹지 않으면 증상이 악화하는데, 임신을 위해 무조건 끊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임신 중 복용 가능한 약으로 대체하거나 복용과 중단을 번갈아 하는 등 전문의와 상의하면 충분히 건강한 출산이 가능하다.
가임기 여성에게 최근 많이 발병하는 만성질환으로 갑상선질환을 들 수 있다. 갑상선에서 충분한 호르몬이 나오지 않는 갑상선기능저하증이 임신 중에 나타나면 빈혈이나 임신중독증, 조산 등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타이록신 같은 약으로 치료하는 게 좋다. 반대로 호르몬 농도가 비정상으로 높아지는 갑상선기능항진증은 태아의 발육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보통은 방사성약물로 치료하지만, 임신 중엔 태반에 영향이 적은 프로필티오우라실 같은 항갑상선제로 대체한다.
여성 유병률이 전체 환자의 70%가 넘는 류머티즘관절염은 임신 기간 동안 증상이 호전됐다가 출산 후 급격이 악화하곤 한다. 출산 전후 계속 꼼꼼한 복약 관리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삼성서울병원 류마티스내과 고은미 교수는 "최근 많이 쓰이는 생물학제제들은 기형 발생률이 매우 낮긴 하지만 가능하면 임신 중엔 끊는 게 좋다"며 "그러나 중단 후 관절염이 너무 심해지면 전문의와 상의해 안전한 약을 골라 쓸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출산 연령이 높아지면서 혈압 때문에 고민하는 임신부도 최근 드물지 않다. 임신부의 고혈압은 조산이나 저체중아 출산 확률을 높인다. 널리 쓰이는 고혈압 치료제인 안지오텐신전환효소억제제보다는 칼슘채널차단제가 임신부에게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알려져 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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