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대선에서 표출된 호남 민심을 '충동적 선택'이라고 발언해 파문을 일으킨 박준영 전남지사가 도의회 본회의장에서 사과를 요구하는 도의원에게 물세례를 받는 봉변을 당했다. 도의회는 즉각 유감을 표명하고 윤리위원회를 소집키로 하는 등 진화에 나섰지만, 박 지사 발언과 물세례 사건을 둘러싼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입장차가 뚜렷해 후유증이 예상된다.
박 지사는 23일 오전 11시20분쯤 전남도의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274회 임시회 제1차 본의회에서 올해 도정 업무보고를 하던 중 통합진보당 소속 안주용 의원(비례)으로부터 물세례를 받았다. 이날 의원석 제일 앞줄에 앉아 있던 안 의원은 박 지사가 단상에 올라 업무보고를 한 지 3분여가 지나자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난 뒤 단상 쪽으로 걸어가 "도지사를 인정할 수 없다"며 물컵에 담긴 생수를 박 지사에게 뿌렸다.
안 의원은 이어 "박 지사가 (충동적 호남 몰표 발언에 대해) 사과도 하지 않은 채 업무보고를 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사과하라. 물러나라"고 비난한 뒤 자리로 돌아왔다.
안 의원은 이날 박 지사의 집행부 간부 소개에 앞서 같은 당 의원의 박 지사 관련 의사진행발언이 의장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자신의 5분 자유발언도 유사 질의라는 이유로 배정되지 않자 이에 항의하는 뜻에서 물세례를 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 의원의 돌발 행동에 본회의장이 술렁거리자 도의회 의장은 "불미스런 폭력사건이 발생했다"며 곧바로 정회를 선언했으며, 이후 20여분 만에 재개된 본회의에서 박 지사는 업무보고를 마쳤다. 앞서 22일 박 지사는 윤시석 도의회 운영위원장이 "본회의에서 5분 자유발언을 통해 호남 몰표 발언에 대한 사과를 요구할 테니, 호남 몰표 발언의 진의가 잘못 전달된 부분이 있으면 기자회견 등을 통해 말하라"고 요구하자, "그럴 필요까지는 느끼지 못한다"고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안 의원은 "지난 8일 박 지사가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한 '충동적 호남 몰표' 발언에 대해 사과와 반성 없이 업무보고를 진행하는 것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으며, 박 지사의 그 발언은 전남도민과 호남을 무시한 오만과 독선의 극치다"고 말했다.
그는 "박 지사에 대한 사과는 아직 마음의 정리가 되지 않았다"며 "그러나 의회 운영 과정에서 절차를 무시하고 충동적으로 행동한 것에 대해 도의회와 도의원께 사과 드린다"고 덧붙였다.
도의회는 본회의장에서 의사진행 과정에서 물컵 투척 사건이 발생한 점에 주목, 정확한 진위를 파악하는 한편 안 의원을 의회 윤리위원회에 넘길 지 여부를 검토 중이다. 전남도는 이날 물세례 사건과 관련 성명을 내고 "신성한 민주주의 상징과 토론의 심장부인 의사당에서 불법 폭력행위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그야말로 의회정치를 포기한 심각한 도전행위로 개탄을 금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농민단체 "성난 민심 표현" 주장
그러나 전국농민회총연맹 광주전남연맹은 이날 논평에서 "이번 물세례 사건은는 충동적 호남 표심이라는 망언을 한 박 지사에 대한 성난 호남 민심의 표현이다"고 주장했다.
한편 박 지사는 지난 8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대선에서 보여준 호남 몰표에 대해 "무겁지 못하고 충동적인 측면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안경호기자 k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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