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크쇼가 막다른 골목에 들어섰다. 차분히 의자에 앉아 한담을 나누듯 하던 정통 토크쇼에 게임을 끼워 넣거나 자살, 성형수술 고백 등 폭탄발언을 해도 도무지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지 못한다. 최근에는 영화 전문 토크쇼, 책 전문 토크쇼까지 나왔지만 저조한 시청률은 좀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불과 4, 5년 전만 해도 토크쇼의 인기는 웬만한 드라마보다 높았다. 1990년대 '자니윤 쇼'가 스타의 일상과 알려지지 않았던 에피소드를 공개하면서 국내 토크쇼의 장을 연 이래 30년 가까이 전성기를 누려 온 셈이다. 오랜 세월 인기를 얻은 원동력은 토크쇼의 무한 변신에 있었다.
1990년대 '이홍렬 쇼'는 게스트와 함께 요리를 만드는 '참참참' 코너를 넣었고, 2000년대 초 해피투게더는 교복을 입고 학창시절 이야기를 풀어내는 '책가방 토크'로 차별화를 꾀했다. 동요를 외워 부르는 '쟁반 노래방'은 틀릴 때마다 쟁반으로 머리를 때리는 벌칙으로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2000년대 말부터는 독한 토크쇼, 집단 토크쇼의 전성시대가 도래했다. '강심장'에 출연한 인기 연예인 10여명은 1위를 차지하기 위해 더 감동적이거나 더 선정적인 이야기를 털어놨다. 홍석천은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포르투갈 선수 4명과 술을 마시면서 "논개정신으로 이것들을 보내야겠다. 이 한 몸 희생하자"는 등 폭탄발언을 했고, 실루엣이긴 하지만 모델 한혜진의 옷 갈아 있는 모습이 여과 없이 방송돼 선정성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최근 들어서는 스캔들, 자살 등 민감한 사생활 공개가 대세다. 한 여배우는 토크쇼에 나와 선배 여배우와 유명 PD가 동거하고 있다고 밝혔고, 한 남자 배우는 "신인시절 발연기 논란에 휩싸여 자살 생각까지 해봤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하지만 너무나 자극적인 이야기에 시청자들의 입이 깔깔해진 것일까. 시청률 저조로 토크쇼들이 줄줄이 폐지되고 있다. '강심장'이 17일 마지막 녹화를 끝으로 3년 3개월 만에 문을 닫을 계획이며 '놀러와', '승승장구' 등은 이미 종영했다. '힐링캠프'는 자극적인 소재보다 따뜻한 치유를 표방하고 있지만 최근 시청률이 10%를 넘지 못하면서 고전 중이다.
신생 토크쇼가 새로운 형식을 내세우며 방송을 시작했으나 현재까지의 성적을 보면 이들의 전망도 어둡다. 강호동의 KBS 예능 복귀 프로그램 '달빛 프린스'는 책 전문 토크쇼를 표방하면서 차별화했는데도 22일 첫회 시청률은 5.7%(닐슨코리아ㆍ전국 기준)로 저조했다. '토크클럽 배우들'은 '배우들의 진솔한 이야기, 그들이 말하는 추억의 영화'로 특화 했으나 애국가 시청률(2.3%)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최근 우후죽순처럼 생긴 토크쇼들이 저마다 새로운 형식이라고 하지만 결국 연예인들의 사적이고 내밀한 이야기를 끄집어 내는 것으로 끝나 시청자들에게 지루함을 준다"며 토크쇼 흥행 부진의 이유를 분석했다. 그는 "스튜디오를 박차고 현장으로 뛰어나가 참신한 아이템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토크쇼의 미래는 어둡다"고 덧붙였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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