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판 '칼레의 기적'이 세계를 들썩이게 하고 있다.
잉글랜드 프로축구의 4부리그(리그2) 구단인 브래드포드 시티는 2000~01 시즌에 프리미어리그(EPL)에서 강등된 뒤 파산 직전까지 갔다. 이듬해 챔피언십(2부)으로 떨어지고, 리그1, 리그2까지 추락했다. 7시즌 동안 3단계나 강등된 브래드포드 시티는 스폰서가 떨어지고 부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회생이 불가능한 상태까지 몰렸다. 하지만 구단은 2007년 극약처방을 내렸다. 파격적인 가격으로 시즌 티켓을 내놓은 것. 138파운드(약 23만원)로 잉글랜드 프로축구팀 중 가장 저렴하게 시즌 티켓을 판매하며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빈곤한 재정 상태 탓에 선수들에게 충분한 연봉을 줄 순 없었다. 선수들 전체 몸값이 7,500파운드(약 1,200만원)에 불과했다. 브래드포드 시티는 영국 축구의 성지인 웸블리 스타디움에 서는 날을 꿈꾸며 EPL의 '골리앗'들과 맞섰다. 캐피털원컵 준결승에서 만난 애스턴 빌라는 2007년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발표한 세계 축구 구단의 가치 순위에서 전체 25위(1억4,000만달러)에 오를 정도로 부유한 구단이다. 또 거부 랜디 러너 구단주가 여전히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붓고 있는 팀이기도 했다.
하지만 승부의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다윗' 브래드포드 시티는 23일(한국시간) 영국 버밍엄의 빌라 파크에서 열린 '골리앗' 애스턴 빌라와의 2012~13 캐피털원컵 준결승 2차전에서 1-2로 패했다. 하지만 앞선 1차전에서 3-1로 승리한 브래드포드 시티는 1ㆍ2차전 합계 4-3으로 앞서 결승 진출 티켓을 따내는 기적을 연출했다. 이로써 브래드포드 시티는 프리미어리그의 위건, 아스널, 애스턴 빌라를 차례로 물리치며 사상 첫 컵 대회 우승 트로피를 노리게 됐다. 캐피털원컵에서 4부리그 팀이 결승에 오른 것은 1961~62시즌 로치데일 AFC(준우승)에 이어 51년 만이다.
'칼레의 기적'은 1999~2000 시즌 프랑스 FA컵에서 4부리그 팀인 칼레가 강호들을 차례로 물리치고 결승까지 진출해 준우승을 차지한 사건이다.
브래드포드 시티는 애스턴 빌라의 홈 공세에 밀렸다. 전반 24분 크리스티안 벤테케에게 선제골을 헌납하며 끌려갔다. 하지만 후반 10분 제임스 핸슨이 동점골을 넣어 결승행에 한 발짝 더 다가갔다. 결국 브래드포드 시티는 후반 44분 안드레아스 바이만에게 두 번째 골을 내줬지만 더 이상 실점 없이 경기를 마쳐 골득실 차에서 앞서 팀 역사를 새로 썼다.
브래드포드 시티는 닉네임은 '싸움닭들(bantams)'로 잘 알려져 있다. 1903년 창단한 브래드포드 시티는 1911년 FA컵 정상에 오른 게 유일한 우승 트로피다. 1999~2000, 2000~01 시즌에 프리미어리그에서 뛰기도 했지만 줄곧 3, 4부 리그를 전전하고 있다.
브래드퍼드의 기적을 연출한 필 파킨슨 감독은 "애스턴 빌라가 공격적인 팀이라서 수비에 허점이 생길 것을 예측했다"며 "경기 전에 선수들 모두 역사를 만들어 내자고 다짐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골키퍼인 매트 듀크도 "기뻐서 말조차 안나온다"며 "선수와 팬 모두 모두 환상적인 경기를 펼쳤다"고 기뻐했다.
브래드포드 시티는 24일 스완지시티-첼시 승자와 결승에서 격돌한다. 스완지시티가 1차전에서 2-0으로 승리해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김두용기자 enjoysp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