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성석제(52)씨는 지난 해 포항시로부터 1억 원의 집필 지원금을 받았다. 지원 조건은 신작 소설에 포항 사투리를 넣을 것. 경상북도와 포항시가 공동으로 진행한 '문화스토리발굴사업'의 일환으로 소설이 널리 읽히면 포항에 대한 간접홍보 효과가 있는데다 문화관광 콘텐츠로 활용할 수 있다는 의도였다. 지난달 출간된 장편 는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지역관광 활성화 방안으로 스토리텔링을 주목하면서, 기성 작가들에게 지역을 배경으로 한 소설 집필을 주문하고, 지원금을 주는 사례가 생기고 있다. 유명 작가의 문학관 건립처럼 기존 작가, 작품을 바탕으로 한 소극적인 문화마케팅에서 이야기를 주문 생산하는 적극적인 방식으로 진화한 셈이다.
지원단체와 집행 주최를 분리해 창작자의 권한을 확대한 것도 눈에 띄는 변화다. 포항시는 문학평론가, 출판사 대표 등으로 구성된 스토리텔링 위원회를 만들어 작가를 선정, 지원했다. 성석제 씨는 "사투리 이외 조건은 없었지만, 포항에서 집필을 하다 보니 소설 배경이 자연스럽게 그곳이 됐다"고 말했다. 소설는 구룡포 고래잡이 딸을 사랑하는 해녀 아들의 이야기로 포항제철소, 송도해수욕장, 보경사, 구룡포 초등학교 등 포항 지명과 물회, 과메기, 모리국수 등 포항 음식이 다양하게 소개됐다.
3월부터 인터넷 교보문고에 연재되는 김주영(74)의 소설 도 울진군으로부터 1억8,000만원의 지원을 받아 집필됐다. 울진군은 울진 십이령 보부상길을 재조명하고 이야기가 있는 관광코스로 개발하기 위해 3년 전 '십이령 보부상길 스토리텔링 개발사업'을 시작하고 십이령길을 제주 올레길과 같은 관광체험 코스로 만드는 한편, 김씨에게 창작 지원금과 십이령길 역사자료, 집필실 '관송헌'을 제공했다. 김씨는 "3년 전 울진군으로부터 십이령길을 무대로 소설을 써줄 것을 요청 받았는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응했다"고 말했다. 울진군은 앞으로 기업, 학교 등과 연계한 보부상 인문학 탐방 행사를 정기적으로 열어 유명소설가, 시인, 화가 등이 참여하는 울진 이야기 단행본 발간사업과 함께 추진할 계획이다.
'소설마저 간접홍보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올 듯 하지만, 출판계와 작가, 지자체는 이런 변화를 반기는 분위기다. 포항시 스토리텔링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했던 문학평론가 하응백씨는 "영화 드라마 원작으로 소설만한 게 없다. 2차 콘텐츠로 만들어지면 투자 대비 홍보효과가 가장 큰 것이 소설 창작지원이다"며 "상당수 지자체가 이런 점을 인식해 작가 지원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위축된 국내 소설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주영씨는 "울진군 외에 여러 곳에서 의뢰를 받았지만 집필 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어 거절했다. 작가는 지원금보다 작품의 완성도를 먼저 생각하기 마련"이라며 "일본소설 은 세계적인 관광지를 만들었다. 우리 소설이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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