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출시되는 모든 게임을 심의ㆍ감독하는 게임물등급위원회(게임위)가 '식물위원회'로 전락하고 있다. 관련법안의 국회통과가 무산되면서 올해 들어 국고보조금 지급이 전면중단돼, 심의 감독 업무가 올 스톱될 위기에 처했다. 연쇄적으로 새로운 게임물 출시가 중단되거나, 아예 등급 없이 시중에 게임이 유통되는 사태가 벌어지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21일 문화체육관광부와 관련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게임물 등급판정과 사후관리 등 업무를 대행하는 게임위에 대한 국고보조를 지난달 말로 종료했다. 이 때문에 이달 들어 직원 월급은 물론 업무수행에 필요한 최소 경비조차 조달하지 못하고 있으며, 게임물 심의 등 기본 업무도 진행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문제의 발단은 게임위에 국고지원을 명문화한 '게임산업진흥법'개정안이 작년 말 정기국회에서 못했기 때문. 애초 이 법에는 국고지원이 작년 말로 종료되도록 되어 있었다. 지난 2006년 '바다이야기'사태를 계기로 심의기능이 게임위에 부여됐지만, 장기적으론 민간자율심의 체제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국고보조를 한시화했던 것이다.
그러나 민간자율기구화 작업은 지연됐고, 정부는 재정자립이 가능할 때까지는 국고지원을 계속하는 쪽으로 법 개정을 추진했다. 하지만 민주통합당 전병헌의원이 게임위 해체안이 담긴 '게임산업제도선진화' 법을 발의하자, 국회는 이 두 법을 병합심의하기로 했고 결국 정기국회 처리가 무산됐던 것이다.
법 개정이 무산됨에 따라 정부는 게임위에 더 이상 국고지원을 할 수 없게 됐다. 게임법상 모든 게임은 출시에 앞서 심의를 통한 등급분류 및 사후규제를 받아야 하는데, 예산이 없어 이런 기본업무조차 수행이 불가능해진 상태다. 이 경우 아예 게임출시가 마비되거나, 혹은 사행성 및 중독성이 강한 게임들이 그냥 시장에 나돌 가능성이 생겼다.
게임위는 궁여지책으로 업체들로부터 받는 등급분류 수수료 인상하거나, 상품권 수수료를 운영자금으로 사용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지만 업체들의 반발로 그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게임위 관계자는 "국회가 게임위의 필요성과 존폐를 논의하더라도 그 전에 진행하던 업무까지 못하도록 예산 줄을 끊는 건 너무 가혹한 처사"라며 "게임위 업무 수행에 필요한 최소경비조차 막는 건 게임산업이나 이용자 모두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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