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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계 의견 아닌 소수 뜻에 따라 교과서 왜곡" 학계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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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계 의견 아닌 소수 뜻에 따라 교과서 왜곡" 학계 반발

입력
2013.01.21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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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을 앞두고 정부가 교과서를 장관 재량대로 바꿀 수 있는 법안을 입법예고하면서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학계에서는 "박 당선인이 대승적 차원에서라도 이 법안을 폐기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장관의 교과서 수정권은 이미 시행령에 명시돼 있기 때문에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학계와 출판계는 시행령만으로 그 폐해가 입증된 내용을 법률로 명시하겠다는 데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장관의 교과서 수정권은 단 한차례 발동된 적이 있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2008년 뉴라이트 단체들의 역사교과서 수정 요구가 거셌다. 이승만 정권의 정체성, 광복과 분단, 미ㆍ소 군정 등의 근현대사 전반에 걸쳐서 진보학계의 시각이 제시된 부분을 '좌편향'이라고 보고 수정을 요구했다. 교과부는 이를 받아들여 2008년 금성출판사 등의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6종에서 55건의 기술을 바꾸도록 명령했다. 이미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전문가 평가를 거쳐서 검정이 끝난 내용들이었다.

금성출판사는 2008년 12월 교과부의 수정 지시에 따라 '남한과 마찬가지로 북한도 단독정부 수립의 과정을 밟아 나갔다'는 등의 문장을 지웠다. 교과부 장관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 경우 교과서를 팔 수 없으니 '울며 겨자 먹기'였던 셈이다. 김한종 한국교원대 교수 등 교과서 저자들은 교과부의 처분이 위헌이라며 서울행정법원에 처분 취소 소송을 냈으며, 이 사건은 학문의 자유와 정부의 권한과잉 논란 및 이념적 갈등으로 확산됐다.

교과부는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위헌성 시비를 줄이기 위해 이번 법률 개정을 추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교과서 저자들은 "교과부의 역사교과서 수정지시처분은 교과서 검ㆍ인정제도를 뒤흔드는 것일 뿐만 아니라 헌법이 기본권으로 보장하는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는 부당한 처분"이라며 시행령을 근거로 한 교과서 수정지시에 대한 위헌성을 지적했다. 교과부는 이번 법개정으로 '기본권을 제한할 때는 법률에 근거를 둬야 한다'는 합헌 요소를 충족하려고 시도하는 셈이다.

한철호 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개정안에 대해 "역사학계 전체의 의견이 아닌 소수의 의견에 따라 교과서가 왜곡될 수 있다"며 "박근혜 당선인이 논란의 소지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교과서 검정은 전문가들에게 맡기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교과서를 출판하는 B출판사 관계자도 "이미 검정이 끝난 후에 다시 수정요구를 하면 지도서, 디지털교과서, 지도자료까지 모두 바꿔야 한다"며 반발했다.

장관의 교과서 수정 권한에 대한 법원 판단은 아직 최종적으로 나오지 않고 있다. 1심은 교과부 장관이 수정을 명령하기 전에 교과용도서심의회의 심의를 거치도록 한 것을 지키지 않았다는 절차상 이유로 저자들이 승소했고, 2심은 "교과부의 재량권 남용이 아니다"고 판단했다. 현재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

교과부 관계자는 "애초 지난해 8월 같은 법안을 입법예고 했으나, 여러 의견을 수렴해 장관이 교과서를 수정할 수 있는 이유를 명시하는 등 보강을 했다"며 "최종 법안 통과는 국회에서 논의해야 하기 때문에 이대로 통과 될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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