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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엔 안돼" 갈 곳 없는 약자들의 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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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엔 안돼" 갈 곳 없는 약자들의 쉼터

입력
2013.01.21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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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해자 상담소 산하기관인 A쉼터는 지난 2002년 초 서울의 한 주택가에 83㎡(약 25평) 짜리 낡은 공간을 얻은 이후 10년째 숨 죽이며 활동하고 있다. 성폭력 피해자 10명에다 상담사 4명이 부대끼며 숙식을 하기에는 턱없이 비좁고 낡았지만 이들은 지금의 동네주민들에게 쉼터의 존재사실이 알려져 쫓겨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기는 실정이다.

실제로 A쉼터는 2010년 2월 SH공사의 지원으로 서울 다른 지역의 40평대로 옮기려다 큰 봉변을 당한 이후 이사를 시도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A쉼터는 당시 벽지와 장판을 갈고 커튼설치까지 마쳤지만 이사를 한 달 앞두고 주민반대에 부닥치며 거센 편견의 벽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당시 성폭력 피해자 쉼터가 들어온다는 걸 알게 된 이웃 주민 수 십 명이 구청에 "성폭력 피해자가 이웃에 사는 게 싫다" "이런 혐오시설이 지역에 들어오면 집값 떨어질 게 뻔한데 누가 책임 질 거느냐"며 민원을 넣은 것이다. 결국 쉼터 이전은 무산됐다. 쉼터 관계자는 "강력 성폭력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강한 처벌을 외치며 분노하는 시민들이 정작 피해자를 돕는 쉼터에는 싸늘한 반응을 보인다"며 "피해자에게 2차, 3차의 가중 피해가 된다"고 말했다.

국내 최초로 설립이 시도됐던 중증장애인 전용 숙박시설 '하조대 희망들'도 주민 반대에 막혀 4년째 첫 삽도 뜨지 못하고 있다. 하조대 희망들은 서울시가 동해의 대표적 휴양지 중 하나인 강원도 양양군 하광정리 하조대 해수욕장에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건립을 추진한 중증장애인용 콘도다. 서울시가 2009년 6월 건축계획 수립한 후 이듬해 양양군과 건축 협의를 완료해 순조롭게 시작됐지만 주민들의 강한 반발로 결국 표류 중이다. 주민들이 공사현장을 봉쇄하면서까지 반대하고 나서자 양양군이 2011년 8월 돌연 허가를 취소했다. 두 달 뒤 서울시가 '건축협의 취소처분 취소소송'을 제기, 2년째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1일 장애인단체의 진정에 따라 "양양군이 건립을 취소한 것은 장애인차별행위"라며 "양양군은 서울시가 시설을 건립할 수 있도록 취소 처분을 취소해야 한다"는 의견표명을 했지만 구속력이 없는 권고수준이라 언제 결론이 날지 모른다.

인권위 관계자는 "사회전반적으로 성폭력 피해자, 장애인 등 약자 지원시설을 꺼리는 미성숙한 의식이 뿌리 박혀 있다"며 "이런 님비(내 뒷마당에는 안 된다)현상은 가중 피해, 가중 차별의 악순환을 낳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김현빈기자 hbkim@hk.co.kr

손효숙기자 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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