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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해지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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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해지지 마'

입력
2013.01.21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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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할머니 시바타 도요는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였다.'있잖아, 불행하다고 한숨짓지마/ 햇살과 산들바람은 한 쪽 편만 들지 않아/ 꿈은 평등하게 꿀 수 있는 거야/ 나도 괴로운 일 많았지만 살아있어 좋았어/ 너도 약해지지 마'라고. 어린 시절에는 여관과 요리점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살았고, 20대에는 이혼의 아픔까지 겪었으며, 여든 한 살에 두 번째 남편과도 사별하고 혼자 살면서 너무 힘들어 몇 번 죽으려고도 생각하다 90세가 넘어서부터 시를 썼다.

▦그리고 98세 때인 2010년 자신의 장례비로 모아둔 100만 엔으로 처녀시집 를 출간했다. 세계 최고령 등단으로 그의 시집은 일본에서만 150만부 이상 팔렸고, 그 해말 한국에도 번역 출판돼 베스트셀러가 됐다. 지난해에는 사진집과 함께 두 번째 시집 도 냈다. 그는 시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시를 배운 적도, 써본 적도 없었다. 이웃과 아들, 손자들에게 들려주듯, 그저 살면서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짧은 메모로 기록했다.

▦할머니는 무심코 한 말이 얼마나 상처를 입히는지 나중에 깨달을 때 서둘러 그이의 마음속으로 찾아가 "미안합니다" 말하면서 지우개와 연필로 말을 고친다. 남의 험담을 하면 그 고통은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바람과 햇살이 "할머니 혼자서 외롭지 않아"라고 묻자 그는 미소 지으며 "인간은 어차피 다 혼자야"라고 답한다.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나자 그는 피해 주민들에게는 천국에 가서도 햇살이 되고 바람이 되어 응원하겠다고 약속한다.

▦이런 그의 시들이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고, 용기와 위안을 주고, 삶에 따스한 온기를 다시 불어넣는다. 거창한 메시지나 철학이 아니다. 언어로 멋을 내지도, 생각으로 다듬지 않았다. 긴 시간 살아온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그 경험들을 진솔하고 소박하게 드러내 보일 뿐이다. 순수한 마음으로 인생의 강을 건너지 않고는 얻어질 수 없다. 20일 101세로 타계한 그의 시들이 많은 사람들에게'힐링'이 되는 이유다. 좋은 시란 이런 것이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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