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여행을 떠나려고 인천공항에 왔다. 항공권 티켓팅을 하고 있는데, 옆의 가족용 카운터에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노부모를 모신 중년부부 일행. 말투로 보니 조선족 동포인 듯 했고, 짐의 규모로 보니 한국에 오래 머물다가 귀국하는 길인 모양이었다.
실랑이의 내막은 이랬다, 할머니는 휠체어에 앉아 계셨는데, 창구직원이 진단서로 보이는 서류를 검토하더니 발권을 거부했다, 의사가 동승하지 않으면 탑승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동행인 여자는 하소연을 하다가 급기야 화를 냈다. 겨우 두 시간 비행 아니냐, 예약할 때는 아무 말 없더니 왜 이제 와서 이러느냐. 비자 만료일이 얼마 안 남은 거 모르겠느냐. 우리의 경제적 손실은 당신이 보상할 거냐.
여자의 언성이 높아질수록 항공사 직원의 태도도 완강해졌다. 예의를 갖추고 있었지만 물러설 태세가 아니었다. 규정상 어쩔 수 없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주의사항을 제대로 살피지 않은 ‘고객님의 실수’다.
고객님의 실수라. 그랬을지 모른다. 하지만 주의사항을 제대로 알았다 한들 다른 방법이 있었을 것 같지도 않다. 비자만료일이 지나면 미등록체류자가 된다. 게다가 함께 동승해 줄 의사는 어디서 찾나. 할머니는 머물 수도 없고 떠날 수도 없는 신세가 되는 셈이다. 할머니에게 닥칠 이 암담하고 끔찍한 상황 앞에서, 내가 항공사 직원이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몰래 내 소속회사의 규정을 어길 수 있었을까. 당신이라면 어땠을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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