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경
갤러리 류가헌 관장
며칠 전 전시장을 찾아 든 관람객 한 분이 조심스레 물어왔다. 벽에 걸린 저 사진을 내가 사갈수도 있냐고. 전시작 구매 문의는 대개 여성들이 해오는 경우가 많은데, 40대로 보이는 남성이었다. 가격을 알고 싶어 했다. 동네 골목에서 마주치면 무심코 지나칠만한 평범한 외양과 차림새였다. 카메라를 매지 않은 걸로 보아 아마추어 사진가라거나 사진애호가 등 사진과 특별히 연결고리가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이가 구매를 원하는 사진은 한 원로 사진가가 찍은 1960년대 전쟁고아 사진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옛날에 작가 자신이 찍었던 사진을 수십 년이 지나 다시 확대하거나 잘라서 재해석한 사진이다. 사진 속에는, 올 빠진 허름한 스웨터 차림의 두 사내아이가 뭐가 그리 즐거운지 마룻바닥으로부터 둥실 뜬 듯 정지된 채였다. “나는 사진도 잘 모르고, 우연히 지나다가 전시장에 들렀는데, 그만 저 아이들이, 저 사진이 왜 좋은지는 모르겠고. 나는 전쟁세대도 아닌데. 가까이 걸어두면 지금 기분을 잊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예술품을 사는 사람을 흔히 ‘컬렉터’라고 부른다. 전문적인 수집가라는 뜻이지만, 한 작품을 사도 대명사처럼 그리 부른다. 그이는 새해 류가헌의 첫 ‘컬렉터’가 되었다.
컬렉터 중에는 이이처럼 작품이 지닌 어떤 점에 마음이 이끌려 일상 속에 가까이 놓아두고 보려는 소박한 목적의 컬렉터도 있고, 소장 가치를 셈해 투자 목적으로 구입하는 컬렉터도 있다. 전자든 후자든, 전시작을 누군가 구매해간다는 일은 작가와 갤러리 모두에게 기쁜 일이다. 대가를 지불하고서라도 소유하고 싶은 감동을 주었다는 의미니까. 또 전시를 준비하노라면 들게 마련인 여러 비용들을 감쇄하거나 다음 작업을 이어나가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갤러리 역시 마찬가지다. 초대전의 경우에는 작가와 일정한 비율로 판매가를 배분하기 때문에도 그렇지만, 작품과 관람객 사이의 그런 ‘전류’는 옆에서 지켜보는 자체로 즐거운 일이다. 컬렉터가 구입의사를 밝히고 계약을 하면 곧바로 판매되었다는 표식으로 ‘빨간 스티커’를 전시작 옆에 붙이는데, 그럴 때면 절로 홍조가 띄어진다. 때론 빨간 점이 몇 개 찍혔는 가로 전시의 성공여부가 평가될 때도 있다. 하지만 전시작이 판매된 양보다는, 판매되는 과정이 늘 더 큰 여운을 남긴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컬렉터 얘기를 하나 더 하자. ‘소소풍경’이라는 사진전을 할 때였다. 전시작 중에 벚나무 한 그루가 한 세상을 이루고 있는 흑백사진이 있었다. 검은 고목의 가지 끝마다 만개한 벚꽃이 투명하고 환했다. 일행과 함께 사진전을 관람 온 여성 관람객이 한 명 있었는데, 며칠이 안 돼 그녀가 혼자서 다시 찾아왔다. 그 벚나무사진이 아무래도 눈에 밟힌다는 게 이유였다. 그녀는 결례라도 범하는 사람처럼 조심스레 물어왔다. 살 수 있느냐고. 그렇다면 값은 얼마냐고. 중년의 평범한 주부로 보이는 그녀에게 결코 적은 액수는 아닐 터였다. 그런데 가격 이야기를 듣고도 구매 의사를 뚜렷이 했다. 계약서를 쓰고 나더니, 그제야 한결 편해진 얼굴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어린 시절을 경남 진해의 외할머니 밑에서 보냈는데, 사진 속 벚나무를 보는 순간 오래 잊고 지냈던 돌아가신 할머니가 떠올라 코끝이 매웠단다. 그래서 일행과 떨어져 한참을 그 벚나무 앞에 서있었다는 것이다. 집에 돌아가서도 그 순간이 잊히지 않아, 결국은 생전 처음 사진을 구매할 생각을 했다. 두 번째 방문은, 장롱 서랍 속에 오래 넣어만 두었던 할머니의 유품을 챙겨 나온 걸음이었다. 쌍가락지로 된 금반지였다. 어두운 서랍에 반지로 넣어두느니, 잘 보이는 벽에 벚나무로 걸어두자 마음먹었다고. 그날 그녀가 구매한 사진 옆에도 빨간 스티커가 붙었고, 그 일은 류가헌을 운영해오는 동안의 여러 기억들 가운데에 선명한 점으로 찍혀있다.
위에 열거한 여러 이유들로, 새해에도 전시작 옆에 ‘빨간 점’이 찍히고 판매가 이어지면 좋겠다. 많이는 아니라도, 잊을 수 없는 방점으로 아름답게 찍히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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