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말기 아내를 5년간 지극히 보살핀 80대 노인이 아내의 산소호흡기를 떼어 내 살인혐의를 받았지만 법원의 선처로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21일 전주지방법원에 따르면 A씨(82)는 지난해 5월5일 전북 전주시 전북대학교병원 중환자실에서 아내 B씨(75)의 산소호흡기를 떼어내려다 이 병원 간호사들로부터 제지를 당했다.
그는 더 이상 회복될 가망이 없는 아내를 평생을 함께 한 집으로 데려가고 싶었지만, 병원측은 위독한 환자를 퇴원시킬 수 없다는 이유로 이를 만류했다.
A씨는 2008년 1월 폐암 4기 판정을 받은 아내가 항암치료를 받도록 5년간 집에서 병원까지 50km에 이르는 거리를 수도 없이 오갔다. 그러나 지난해 4월 건강상태가 악화돼 응급실에 입원한 B씨는 한 달도 못돼 호흡곤란으로 중환자실로 옮겨져 심폐소생술을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는 고통 속에서 헤매는 아내를 더는 두고 볼 수가 없었다.
A씨는 간호사들에게 제지를 당한 이후에도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그는 이날 오후 아내의 산소호흡기를 떼고 미리 준비한 과일 깎는 칼로 영양분을 공급하는 튜브를 잘랐다. B씨는 질식사했고, A씨는 살인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다른 노부부들이 손주의 재롱을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어린이날, 70여 년을 함께 한 노부부는 한 명은 살인자가 되고, 한 명은 피해자가 되는 비극을 맞이해야 했다.
전주지법 제2형사부(부장판사 김현석)는 21일 이 같은 사정을 고려해 A씨에게 권고형(징역 6~10년)을 훨씬 밑도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살인은 무엇보다 소중한 인간의 생명을 박탈하는 중대한 범죄여서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며"그러나 피고인이 아내의 투병생활을 위해 최선을 다했고 아내를 떠나 보내고 정신적으로 힘겹게 생활하는 것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선처 이유를 밝혔다.
전주=박경우기자 gw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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