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계 온갖 상 휩쓸었지만…예술가 저마다의 색깔 있을 뿐인데 끊임없이 새로운 것만 요구해기존 작품 발전시킬 기회 필요현대무용·방송댄스… 춤은 다 하나학벌 높이고 강단 서는 방법으로 주류에 편입하고 싶지는 않아춤으로 통해야 가장 진화된 소통
"주변에서는 제가 요즘 뜨는 '핫한' 안무가라고 하시는데 전 잘 모르겠어요. 잘 먹고 잘사는 사람은 따로 있는데…."
무용가이자 안무가 김보람(30)씨는 현대무용을 시작한 2008년 이후로 줄곧 화려한 경력을 쌓아왔다. 2008년 젊은 창작자를 지원하는 CJ 영페스티벌에서 최우수작품상을 탔고 2009년 한국춤평론가회의'올해의 춤비평가상' 연기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2010년에는 '평론가가 뽑은 젊은 안무가 초청 공연'에서 '바디콘서트'로 최우수작품상을,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의 서울댄스콜렉션에서 '공존'으로 최우수작품상을 탔다.
돋보이는 성과를 거둬온 그에게서 뜻밖에도 17일 가장 먼저 들은 것은 자조 섞인 푸념이었다. "뭔가를 만들고 연습하는 게 재미있어 불러 주는 곳이 있으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무대에 섰지만 지금 제게 남은 것은 빚뿐이에요. 작품 외의 활동을 전혀 안 했으니까요."
냉소의 발단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만 요구하는 한국 예술계의 풍토"다. 비인기 예술장르인 무용계, 그 안에서도 대중가수 백업 댄서 출신의 비주류인 그가 현대무용계에 등장하자 비난과 찬사가 동시에 쏟아졌다. 지난 5년간 선보인 11편의 공연에 대해 '몸과 음악으로 새로운 언어를 만든다'는 호평이 많았지만 "'새롭다'는 말의 함정에 빠지면 안 된다는 것을 안다"고 그는 말했다.
"예술가 저마다의 색깔이 있을 뿐인데 처음엔 '새롭다'고 하다가 금세 '새롭지 않다'고 해요. 지원은 늘어나는데 왜 좋은 작품이 안 나오냐고 할 게 아니라 예술가가 기존 작품을 발전시킬 기회를 신작 못지 않게 늘려 줘야 하지 않을까요. 1년 넘게 신작을 포기하고 기존 제 작품의 재공연 기회만 찾고 있어요."
전남 완도 출신인 그는 초등 3학년 때 TV를 통해 가수 현진영의 힙합춤을 보고 춤에 빠져 살다 고 2때 무작정 상경했다. 실업고에 다니면서 '프렌즈무용단'에 들어가 7년 간 엄정화 이정현 코요테 등의 백업 댄서로 일했다. 대학 진학 계획은 없었지만 마이클 잭슨이나 마돈나 같은 팝스타의 댄서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미국 비자를 쉽게 받으려고 서울예대 현대무용과에 입학했다.
대학에서 무용의 기본을 익히며 "비보잉, 힙합 같은 스트리트 댄스나 방송 댄스, 현대무용 할 것 없이 결국 춤은 다 하나"라는 믿음을 갖게 됐다. 2008년 안무가 안성수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이끄는 무용단 안성수픽업그룹의 작품 '봄의 제전-장미' '싯점' 등에 출연하면서 현대무용과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었다.
그는 뜻 맞는 무용수들과 함께 '규정할 수 없는 애매모호한 춤을 춘다'는 의미로 '앰비규어스(ambiguous) 댄스 컴퍼니'를 만들어 작품을 선보여 왔다. 헤쳐모여식으로 활동하던 단체였지만 그마저 유야무야됐다. "저만큼 춤을 사랑하는 순수한 친구들이었는데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월급은커녕 차비도 못 줬거든요. 계속 밀고 나가는 건 분명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각자 더 해 보고 싶은 걸 찾아보자고 했죠."
그나마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무용수 한 명과 함께 생활하고 있어 2인무인 '공존'을 가끔 공연한다. 초청 받아 일본, 러시아 등에서 공연했다. 최근 프랑스에서도 연락이 왔지만 항공료는 초청 조건에 포함되지 않아 고민 중이다.
"무용계 관계자가 객석의 80%를 채울 정도로 무용 관객이 없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는 안무가로 살아남기 위해 학벌을 높이고 강단에 서는 등의 방법으로 주류에 편입할 생각이 없다. "춤으로 하는 소통이 가장 진화된 소통"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말이 너무 많은 세상에서 원초적인 몸의 언어야말로 가장 정확한 말이죠. 그리고 모든 사람은 자기의 춤을 갖고 있어요. 나의 정체성이 빠져 있는 교육 시스템으로 규격화된 춤이 어떻게 현대무용일 수 있겠어요. 그건 예술이 아니고 기술이죠."
그래서 그는 '핫한 안무가'이기보다 그저 안무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돈 벌려는 욕심보다 내가 살아 있고 더 많은 관객과 만날 수만 있다면 바랄 게 없어요. 영화나 책처럼 좋은 춤도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만한 진한 향기가 배어 있으니까요."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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