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그렇게 우습게 보이나."
방송통신위원회가 단단히 화가 났다. 과도한 보조금 지급으로 영업정지처분을 받은 이동통신업체들이, 마치 방통위를 비웃듯 제재 이후에도 보조금 지급 등 불법행위를 버젓이 일삼고 있는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18일 오전 열린 방통위 전체회의에서 상임위원들은 격앙된 반응을 쏟아 냈다. 한 참석자는 "방통위 역사상 상임위원들이 이렇게까지 화를 낸 적은 없었다. (이동통신사들의 행태를) 단순히 법 위반이 아니라 국가 공권력에 대한 무시로 보고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고 전했다.
이날 회의에서 홍성규 상임위원은 "방통위를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징계를 받고도 또 불법 행위를 벌이겠는가. 전수 조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희 위원도 "이동통신사들이 방통위를 우습게 보고 있다. 조사를 다시 해서 엄중 조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통위가 이렇게까지 분개하는 건 지난달 24일 과다 보조금지급으로 이동통신 3사가 순차적 영업정지처분을 받았음에도, 당장 다음날(25일)부터 또다시 불법보조금을 지급한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방통위가 지난달 25일부터 지난 8일까지 3사의 신규 가입자 124만명 가운데 1,526건을 표본 조사한 결과, 31% 가량이 허용 상한선(27만원)을 넘는 보조금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LG유플러스는 영업정지 첫 날인 지난 7일 '가개통' 영업까지 했다. 가개통이란 타인명의로 임시 개통한 뒤 나중에 명의자를 바꾸는 불법영업이다.
방통위 관계자는 "조사 결과 전국 6개 LG유플러스 대리점에서 13건 가량 가개통 신규 가입이 있었다"며 "다만 위반 행위가 일부 영업점에 국한되고 위반율이 0.3%로 미미해 경고 조치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LG유플러스는 불법으로 규정된 13건 중 9건은 개통 전 문제를 발견해 해지조치를 취한 만큼 실제 가개통은 4건에 불과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LG유플러스측은 "KT가 함정수사 식으로 직원을 동원해 무리하게 당사의 대리점에 위반을 종용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방통위는 이 같은 표본 조사로는 보조금 근절에 한계가 있다고 보고 전면적 재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이계철 위원장은 "이동통신사들에게 강력 경고하고 시기를 정해서 재조사하라"고 지시했다. 김충식 부위원장은 "상임위원 사무실에 매일매일의 보조금 상황을 알 수 있도록 주식시세표처럼 보조금 모니터링 그래프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방통위가 굴욕을 자초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보조금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 언제나 솜방망이처벌로 일관하다 보니 이동통신사들의 불법행위가 체질화됐다는 것이다. "지금 같은 방통위 태도로는 보조금을 절대로 근절시키지 못한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