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에서는 오랫동안 인간 정신을 인문학적 영역, 즉 이성의 산물이라고 믿어왔다. 계몽철학자들은 지식과 판단의 주인은 명징한 '의식'이라고 설파했다. 이런 고정관념이 19세기 말 정신분석학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이라는 책을 내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정신분석도 엄밀한 의미로 과학이라 보기 어렵다. 당시는 '무의식의 집'이라고 할 수 있는 '뇌'에 대한 정보가 거의 전무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이 뇌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게 된 것은 1990년대에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이 개발되면서다. fMRI는 자기공명영상(MRI)과 비슷하지만 관찰대상이 뇌에 집중된다는 점이 다르다. fMRI는 뇌 활동 강도가 달라질 때 생기는 미세한 혈류 변화를 감지해 뇌의 부분별 활동을 지도로 만들어낸다. 형이상학적인 인문과학에 머물던 의식과 무의식을 실험심리학과 인지과학 등을 통해 구체적인 작동 메커니즘으로 풀어내면서, 인문학에 머물던 무의식이 과학적 영역의 '새로운 무의식'으로 발전한 것이다.
책 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는 무의식에 관한 연구성과를 명쾌하게 정리하고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뇌 과학을 통해 밝혀진 무의식, 즉 '새로운 무의식' 속에서 인간의 감정이나 판단, 기억들은 오류투성이"라고 주장한다. 실례로 와인을 마신 사람의 뇌를 fMRI로 촬영한 결과, 같은 와인을 마셨는데도 비싼 가격표가 붙은 제품을 마시면 쾌락적 경험과 관련 있는 눈 뒤쪽의 안와전두엽 피질 활동이 더 활발해졌다. 같은 와인인데도 가격이 비싸다고 믿는 와인을 마시면 더 큰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다.
반대로 단순히 기분 탓으로 여겼던 일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됐다. 불안할 때 진통제(타이레놀)를 먹으면 왠지 편안해진다는 사람이 많아 이를 복용한 사람의 뇌를 fMRI로 촬영해보니, 사회활동 관련 뇌 영역의 움직임이 줄었다. 진통제가 물리적 고통과 함께 사회적 고통도 덜어준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이다.
어려운 과학 이야기인데도 비교적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것은 작가의 필력 덕분이다. 미국 캘리포니아공대(Caltect) 물리학과 교수이자 베스트셀러 과학 작가인 저자는 스티븐 호킹의 세계적 베스트셀러 가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도운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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