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씨 영하 11도의 매서운 추위가 몰아친 지난 9일 서울 행당동 유기동물보호센터. 동물보호단체'동물자유연대'가 한 주택을 개조해 마련한 이 센터의 현관문을 열자 각종 냄새가 확 풍겨왔다. 수 십마리의 개가 한꺼번에 짖어대는 통에 넋이 나간 것도 잠시. 시야에 버튼을 위로 올려야 열리는 안전문이 먼저 들어왔다. 보호센터의 모든 방에는 안전문이 설치돼 있는데, 현관의 안전문은 동물의 가출을 막는 최후의 보루라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고 센터 직원은 말했다.
자원봉사를 위해 트레이닝 바지를 덧입고 앞치마를 둘렀다. 1년 6개월간 보호소 관리를 맡아온 김현교 간사를 따라 중형견이 모여있는 방에 들어섰다. 5마리가 한꺼번에 달려들어 냄새를 맡아댔다. 깔아 놓은 패드 위 대소변을 치워주고 털이 빠진 물그릇을 바꿔주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었다. 처음엔 다소 꺼림직하고 힘겨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연스러워졌다.
이어 다소 체구가 작은 개들로 채워진 다른 방에서 놀아주기 봉사를 했다. 개들 사이에도 서열이 있어 동시에 만지거나 연달아 만지면 싸움이 벌어지기 때문에 약간 시차를 두고 놀아줘야 했다.
대형견과 중형견들이 있는 마당. 밥을 준 뒤 물을 주기 위해 물그릇에 펄펄 끓는 물을 갖다 부었는데 날씨가 추워 금새 식어버리고, 곧 얼어 물을 채워주는 것도 부지런함이 필요했다. 단순 작업이었지만 1층만 살펴보는데 2시간이 훌쩍 지났다. 여름에는 목욕과 산책까지 추가로 해야 하니 더욱 일손이 바빠진다고 한다.
이곳 보호센터는 실내 2명, 실외 2명 총 4명이 상주하며 63마리의 유기견, 17마리의 유기묘를 돌보고 있다. 사람이 근처만 가도 꼬리를 흔들며 안전문 밖을 응시하는 유기견들. 한 때는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자랐을 테지만 교통사고를 당했거나 종양이 있거나 각기 다른 이유로 이 곳까지 오게 됐다. 사연 많은 동물들이 모여있다 보니 제때 약을 먹여야 하거나 정기적으로 병원에 데려가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사람의 손길이 지속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다.
이 곳에 등록된 자원 봉사자들은 30여명. 1주일에 한 번 정기적으로 활동을 하는 봉사자들은 20여명인데 대부분 여대생들이다. 보통 집에서 동물을 기르거나, 기르던 동물이 죽은 경우, 또 기르고는 싶은데 여건이 안 되는 사람들이 보호소의 문을 두드린다.
이날 처음 보호센터를 찾은 김경성(21)씨도 지방의 고향 집에서 6살짜리 '시츄'를 키우고 있는데 자주 보지 못하는 그리움에 보호소를 찾았다. 김씨는 "덩치 큰 강아지들이 달려드니 정신이 없긴 하지만 서로 만져달라는 강아지들과 놀아주는 게 뿌듯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부터 목욕을 전담하고 있는 이정수(26)씨는 키우던 강아지 1마리가 하반신 마비가 오면서 어려운 환경에 처한 동물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경우다.
사실 이 곳 보호소는 형편이 그나마 나은 편이다. 동물단체가 시민들의 후원을 받아 직접 운영하기 때문에 관리가 잘 되고 있다. 전국적으로 유기동물 보호시설은 384개 가량(2009년 기준)인데 시, 군, 구 직영이 17개소에 지나지 않는다. 대부분 예산, 인력부족으로 유기견들이 세심한 관리나 적절한 치료를 받기 어려운 실정이다. 운영방법도 일관성이 없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행당동 유기동물보호센터를 비롯해 전국 유기견보호소를 찾는 자원봉사자들은 많지만 80% 가량이 1회성에 그치는 것도 아쉬운 점이다. 3개월 이상 장기봉사를 해야만 일정 조율이 가능하고 목욕, 산책, 청소 등 업무를 나눌 수 있어 꾸준한 봉사가 필요하다. 직접 자원 봉사가 어렵다면 항상 필요한 패드, 사료, 약을 먹이기 위한 캔, 사이즈가 큰 옷을 지원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김 간사는 "관리자들이 바쁘다 보니 봉사자들이 개들과 놀아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며 "어려운 상황에 있는 유기동물 보호소들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했다.
고은경기자 scoop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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