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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도 동정도 거둬라… 장애는 삶의 한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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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도 동정도 거둬라… 장애는 삶의 한 형태이다

입력
2013.01.18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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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학의 고전' 뒤늦게 번역·출간 만성질병과 맞닥뜨린 여성학 교수 장애인 여성 삶의 문제에 천착사회에 만연한 '속도주의' 비판하며 장애선별 낙태문제 등에 조언"장애를 개인적 불운으로 봐선 안돼 장애인이 참여할 수 있는 사회로"

엄청난 역경을 딛고 장애를 극복한 이들을 영웅으로 만드는 일은 과연 바람직한가. 보통 사람들 중에도 뛰어난 인물이 있지만 대부분은 평범하다. 장애인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유독 역경을 이겨낸 장애인을 인간 승리의 주인공으로 추앙한다. 그런 사회 분위기는 세계적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나 의족 스프린터 오스카 피스토리우스가 되지 못하는 평범한 장애인들을 불편하게 한다. 희망의 증거가 되기도 하지만 때론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이상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결국 대다수 장애인에게는 한계를 절감하게 하는 잔인한 벽이 되기 때문이다.

은 이런 시각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장애에 대한 환상을 거두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돕는다. 장애 여성들의 경험과 통찰, 학자들의 이론을 접목하며 장애를 재앙이 아닌 그저 삶 그 자체로 받아들이도록 현실적으로 설명했다. 장애여성에 관한 이론과 연구가 많지 않았던 1996년 출간되며 장애학의 고전으로 불린 책으로 뒤늦게야 번역되어 나왔다. 그린비에서 출간된 책의 표지는 두 발가락의 타이완 작가 이쥔산(易君珊)이 자신의 다리에 맞춘 장신구를 만들어 착용하고 찍은 사진 '한 번만이라도 섹시할 수 있을까?'다. '비정상'이라고 치부되는 이들도 아름다워지고 싶으며,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음을 보여주지만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실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한 장의 사진은 강렬한 인상을 준다.

저자 수전 웬델은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에 위치한 사이먼 프레이저 대학의 명예교수로 여성학을 전공한 이다. 1985년의 어느 주말 독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지각능력의 이상과 관절, 근육의 통증으로 이어지면서 결국 근육통성 뇌척수염 진단을 받았는데, 만성질병을 안고 살아가게 됐다. 때문에 장애인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약자의 처지인 여성의 문제에 천착했고, 눈으로 알 수 있는 장애 외에도 만성질병, 희귀질환, 피로ㆍ통증 질환, 암, HIV감염, 우울증 등을 지닌 사람들이 적절한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도 문제점을 지적하는 등 장애인 학술연구가 가진 범위를 확장했다.

저자의 관점 중 장애를 '개인적 불운'으로 보는 접근 방식에 대한 반발은 흥미롭다. "비장애인들이야말로 인생에 대해 '요행식 접근'만을 하고 있다"며 모든 사람들의 능력, 요구와 함께, 고통의 분배를 실질적으로 처리하는 사회 계획이 제대로 수립되지 못하는 이유라고 일갈하는데, 익히 인식하고 있던 것을 일깨운다. 예컨대, 저자처럼 지속적인 부분적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정책을 만들 경우, 보험회사는 어떤 사람이 그 정책 때문에 다른 이들이 장애인이 되고 싶어할 거라는 경고를 한다는 것이다. 장애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떠안는 것에 대해 대중적 입장이 매우 첨예할 뿐 아니라 적대감 또한 크다. 그러나 이것이야 말로 '인생을 운에 맡기는 접근방식'이라는 것이다. 대소변을 보고 나서 누군가 엉덩이를 닦아 줘야만 하는 삶이 언제 어떻게 나와 내 가족에게 닥칠지 모를 일이다. 사람이 온전히 몸을 통제할 수 있다는, 즉 자신은 아프지 않고 장애를 갖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먼저 수정되어야 한다.

저자는 또 장애를 동정의 시선으로 보며 두렵고 공포스럽게만 묘사하는 사회적 편견을 고쳐야 한다면서 장애선별 낙태 문제에 조심스럽게 조언한다. 무조건적으로 안 된다고 못박을 일은 아니지만, 부모에게 장애아를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어떤 치료법이 있는지를 알려주는 등을 알려줘 세심한 고려를 하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선별 낙태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사회는 장애를 가진 삶이 살 가치가 없다는 믿음을 퍼뜨리며 당연히 스스로가 장애를 갖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게 만든다고 충고한다.

장애를 일으키고 장애인을 불편하게 하는 사회요인인 삶의 속도에 대해서도 성찰을 요구한다. '한 사회 내의 삶의 속도가 빨라질 때 더 많은 사람들이 장애를 가지게 되는 경향'이 있으며, 더 빨리 하려고 애쓸수록 신체적 손상을 만들 뿐 아니라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이들의 한계를 두드러져 보이게 하기 때문이다. 천천히 해도 무방한 일들까지 빨리 처리해내지 못해 안달하는 속도사회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장애는 어쩌면 그리 먼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애초에 통증과 질병, 죽음 등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거부당한 몸을 꺼리지만, 반대로 사회에서 끌어안지 못하고 장애를 추방함으로써 그에 대한 두려움을 만들어 내는 측면도 크다. 저자는 '그저 괜찮은 직업'이 아니라 자신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분야에서 능력을 계발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스웨덴의 경우 중증 장애인이 있는 가구의 평균 수입이 장애인 가족 구성원이 없는 가구의 평균 수입에 조금 미치지 못한다는 예를 든다.

한쪽으로 몰아가지 않고 차분하게 이상적인(정상적인) 몸이라는 제한된 범주만을 위한 사회가 아닌 모든 이를 포용하는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는 요지를 설파한다. 책은 질병과 장애가 재앙이 아니라 삶에서 경험하는 자연스러운 일의 하나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장애인이 사회 전반에 참여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여건 조성으로 이어지고, 그렇게 되면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삶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사회에 주어져 장애를 보는 시각 또한 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국립장애인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음성과 점자로도 책을 찾아볼 수 있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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