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대는 2002년 당시 생긴 지 2년째인 동아시아학술원의 역량 강화를 위해 대학원 과정에 해외 한국사 석학을 영입했다. 제임스 팔레 미국 워싱턴대 교수와 미야지마 히로시(宮嶋博史ㆍ65) 일본 도쿄대 교수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두 사람 모두 '식민지 근대화론자'라는 국내 학계와 언론의 비판에 직면했다.
교토대 재학시절 재일한국인 차별 문제를 보고 한국사 공부를 시작해, 그 공부로는 "대학 취직하는 것은 단념하라"는 지도교수의 경고까지 들어가며 전공을 밀고 나간 미야지마 교수에게 이 같은 반응은 착잡한 것이었다.
"토지조사사업을 근대화로 평가했다는 이유였다. 토지조사사업이 한국의 토지제도를 근대화시켰지만 그것은 일제의 혜택이 아니라 조선시대에 이미 수조권(收租權ㆍ토지세를 거둘 권리)적 토지 지배가 해체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일제 미화라고 비판하는 사람은 내 책을 읽었는지 의심스러울 뿐이다."
그 뒤로 성균관대에서 10년 넘게 가르치며 도쿄대 명예교수도 된 미야지마 교수가 일본과 한국에서 공부하고 가르쳐온 자신의 경험을 서두에 붙이고 최근 10년간 쓴 논문을 모아 라는 책을 냈다. 책은 1994년 발표해 논쟁을 불러일으킨 논문 '동아시아 소농사회론'의 문제의식과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토지소유, 국가체제, 신분제, 지배계층, 가족사 등에 대한 한중일 비교 연구를 망라한다. 앞으로 동아시아 역사 연구의 방향에 대한 의견도 덧붙였다.
그는 책에서 서구와 달리 동아시아의 근대는 개항기 때가 아니라 중국의 경우 명대(14~17세기)에, 한국은 조선 중기인 16세기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소농사회'가 이때 만들어져, 그 제도와 관습이 전통으로 지금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조선의 '양안(量案)', 명ㆍ청의 '어린도책', 도쿠가와 바쿠후 시기의 '검지장(檢地帳)' 같은 토지대장을 분석해가며 이 같은 서구 봉건제의 부재를 주장한다. 특정 계급의 특권적 토지소유가 없었다는 점에서 엄격한 계급ㆍ신분 개념이 아니었다며 양반의 존재양식도 살폈다.
주자학을 보는 시각도 참신하다. 인간의 평등성을 전제하면서 학습에 따라 인간에 우열을 두고 그를 토대로 사회질서를 구축하려 한 주자학은 당시로서는 합리적인 사상이었다. 조선의 주자학 수용은 사대주의에 갇혀 중국 문명을 무조건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가장 앞서 있던 중국의 사회모델을 수용하는 일종의 세계화 과정(유교적 근대화)으로 해석한다.
이처럼 동아시아의 근대화 시점을 새롭게 찾으려는 그의 노력은 "서구적 근대가 글로벌리제이션이라는 이념 아래 모든 중간단체, 나아가서는 국민국가마저도 부정하는 방향으로 번져가는 가운데 벌거벗은 개인을 기초로 하여 사회질서를 어떻게 형성해나갈지의 문제가 새로이 떠오르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동아시아 역사인식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는 작업은 결국 인류 보편의 과제를 탐구하는 것과 맥이 닿아 있다는 말이다.
덧붙여서 그가 말한다. "한국과 일본은 어쩌면 서구 중심의 근대주의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지역일지도 모른다. 서구 중심적인 역사인식이야말로 한국과 일본의 대립을 낳게 한 요인이다. 나는 일본과 한국 사이에 존재하는 역사 인식에 관한 대립을 넘어서서 서로가 상대를 존중하고 배우는 관계를 만들기 위한 역사 연구를 추구한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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