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 소재로 쓴 두 번째 소설암울한 20대 초상 그리지만 진정 비주류 비애 재현했는지…
21세의 노래방 호스트를 통해 20대 청춘들의 성과 방황을 그린 소설 '제리'로 34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던 김혜나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3년에 걸쳐 퇴고를 반복했다는 신작은 이전 작품보다 한결 더 파격적인 소재인 '20대 동성애'를 통해 오늘날 청춘들의 비애와 사회 부적응, 어긋난 연애와 상처 등을 보여준다. 작가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밑바닥 인생들을 통해 오늘날 청춘의 불우한 단면을 그리면서, 한편으로 왜 이 청춘들이 그 파멸의 굴레를 탈출하지 않는지 나름대로 설명해보려 한다.
'아버지가 있지만 내 아버지가 아니고 애인이 있지만 내 애인이 아니며 꿈이 있지만 꿈에 다가설 수 없다.'
27세의 성재는 화장품 가게 판매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용돈을 해결한다. 직업고등학교를 나와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은 성재에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첩의 자식'이라는 우울한 가족사와 27세가 되도록 제대로 된 직장 하나 가져본 적 없는 무능력, 남다른 성적 취향, 이 상황을 탈출할 수 없을 것이라는 무기력함으로 성재는 하루하루를 절망에 젖어 산다.
노래방 도우미로 날마다 술을 게워내는 엄마, 호스트바에서 만난 동창생 주아, 트렌스젠더로 물뽕을 같이 마시는 친구 은주 역시 이런 절망적 상태를 안락하게 즐기는 인물들이다. 옛 애인 민수는 부잣집 여자와 결혼해 딸까지 버젓이 낳은 뒤 성재를 다시 만난다.
극심한 절망감을 견디지 못하고 성재는 무너져 내리고 급기야 민수의 집에서 데이트를 하다가, 아기 욕조를 깨뜨리며 이별을 고한다. 죽을 힘을 다해 다시금 삶 앞으로 기어 나온 성재에게 이제 뜻밖에도 아버지의 부음이 전해진다. 미혼모인 엄마와 사생아인 성재는 장례식 참석조차 거부당하고, 마지막으로 민수를 찾아간 성재는 그와 아무런 느낌 없는 섹스를 나눈다. 성재는 자신의 얼굴에 화장을 하면서, 자신이 원했던 '진짜 삶'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화장을 모두 지운 뒤 아버지의 장례가 치러진 도시로 향한다.
소설의 제목 '정크(junk)'는 쓰레기, 폐기물을 뜻하는 말로 흔히 정크푸트, 정크메일 등 빠르게 변하는 전지구적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생긴 여러 사회문화 결과물을 뜻하는 접두어로 쓰인다. 이를 빗대 최근 국민국가의 법 통치를 벗어나 헐벗은 주체-이주민, 노숙자 등-를 일컬어 '쓰레기가 되는 삶'(지그문트 바우만)이라 일컫기도 한다. 김씨의 소설은 이런 그럴듯한 이론과 작품 속 파격적인 성 묘사로 주목 받아왔고 이 소설 또한 이 연장선에서 쓰였다.
하지만 성찰의 깊이나 구성, 문장과 묘사는 여전히 신인 티를 벗지 못해 어설프다. 동성애에서 남자 역할을 뜻하는 '톱', 여자 역할을 하는 수동적인 남자 '다운', 마약류인 물뽕을 제조하고 마시는 방법 등 인터넷포털에서 검색만 하면 알 수 있는 정보들로 밑바닥 주인공의 인생을 엉성하게 재현한다. 얼핏 농도 짙은 섹스 장면을 통해 질풍노도의 청춘을 그린다는 점에서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떠올릴 법하지만, 이 소설은 섹스 장면을 배경으로 루저들의 푸념을 내뱉고 있다는 점에서, 요컨대 섹스가 소재로 전락했다는 점에서 '상실의 시대'와 거리가 먼 듯 보인다.
소설은 동성애자 청년을 통해 암울한 20대 초상을 그린다. 그것은 욕망의 좌절이 분노와 절망을 낳고 그것이 출구 없는 몸부림으로 분출되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 소설이 진정 투명하게 오늘의 청춘을, 비주류의 비애를 재현했는지는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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