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이명박 대통령에게서 목사, 승려 등 종교인에 대한 소득세 부과 결심을 얻어내는 데 실패했다. 종교인 과세 원칙에는 변함이 없으며 조만간 구체안을 내놓겠다는 재정부의 의지에도 불구, 종교인 과세의 실현 여부는 차기 정부를 이끌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손으로 넘어가게 됐다.
재정부는 17일 종교인 소득세 과세 방안이 배제된 '2012년 세법 시행령 개정안'을 발표했다.
백운찬 세제실장은 "종교인 과세 원칙은 확정됐다"면서도 "소규모 종교시설에 대한 과세 인프라 구축과 과세방식ㆍ시기에 대한 추가 협의를 위해 이번 개정안에는 포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말 그대로만 보면, 종교인 과세가 미뤄진 게 원칙의 문제가 아니라 징세의 기술적 문제에 불과한 셈이다.
그러나 재정부 주변에선 다른 해석이 나온다. 박 장관이 지난해 한국일보 보도(3월3일자 1ㆍ2ㆍ3면)를 계기로 강력한 과세 의지를 보여온 걸 감안하면, '과세 인프라'와 같은 실무적 문제보다는 최고 결정권자의 동의 등 본질적 부분에서 막판 난기류를 만났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실제 이 대통령의 강력한 지지기반인 보수 기독교계 내부에선 부정적 정서가 여전하다.
이 대통령 임기 내 종교인 과세가 무산된 만큼, 이제 모든 결정과 그에 따른 평가는 차기 정부의 몫으로 넘어가게 됐다. 재정부 관계자도 "(13일 진행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대한 업무보고에 공식 포함되진 않았지만, 이 문제에 대해 인수위와 협의하고 있다"며 "현재 박 당선인의 최종 결심을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백 실장도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구체적인 내용을 확정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혀 인수위와의 조율이 상당 폭 진행됐음을 시사했다. 시행령은 세정 당국이 국회 동의를 거치지 않고도 연중 필요할 때 고칠 수 있는 만큼, 박 당선인만 결심하면 차기 정부가 들어선 직후라도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당국은 종교인 과세 여부가 워낙 민감한 사안이라 말을 아끼면서도 박 당선인이 결심을 하게 될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작년 3월 이후 사회적 논의가 광범위하게 진행되면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고, 유보적이던 종교계도 보수 기독교계 일부를 제외하면 수용 입장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더욱이 '비과세ㆍ감면 축소와 지하경제 양성화로 복지재원을 마련하겠다'는 박 당선인이 '국민개세주의'(國民皆稅主義)의 상징인 종교인 과세를 거부할 경우 국민적 공분을 자초할 수도 있다.
다만 과세가 이뤄져도, 초기에는 연착륙을 위해 단계적 접근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실제 종교인의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근로소득' 대신 '기타소득'으로 세금을 징수하는 한편, 종교 시설의 규모에 따라 과세시기를 조정하는 방법이 논의되고 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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