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20일 저녁 미국 수도 워싱턴은 첫 흑인 대통령의 취임에 흠뻑 취해 있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180만명의 인파가 몰린 취임식에 이어진 저녁 무도회에서 부인 미셸과 춤을 추며 최고의 밤을 보내고 있었다. 이날 저녁 오바마가 참석한 공식 연회만 10개. 그러나 연회장 어디에도 공화당 수뇌부는 없었다.
같은 시각 워싱턴 도심의 한 유명 스테이크하우스. 이날 낮 취임식장에 얼굴을 나타냈던 공화당 인사들이 하나 둘 모였다. 대선 패배의 상처를 서로 위로하던 이들의 대화는 자연스레 미래에 모아졌다. 오바마 집권 4년 동안 어떻게 대처할 지가 숙제였다. 이 모임을 주선했던 공화당 전략가 프랭크 런츠는 "방 안이 꽉 찼다"면서 "공화당 소속 상ㆍ하원 지도자들이 논쟁까지 벌였다"고 미국 공영방송 PBS에 말했다. 모임에는 하원에서 에릭 캔터 원내대표, 캔터에 이은 당내 서열 3위인 케빈 매카시, 막강한 권한을 지닌 예산위원회 위원장이자 4년 뒤 공화당 대선 후보의 부통령 후보가 된 폴 라이언 의원 등이 참석했다. 상원에서는 최근 헤리티지 재단 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보수 유권자 운동 티파티의 대부인 짐 드민트, 성김 주한 미국대사의 인준을 상당기간 보류시켰던 강경파 존 카일, 가장 보수적인 정치인으로 유명한 톰 코번 의원 등이 나왔다. 오바마에게 독설을 퍼붓던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이 진행한 전략회의는 3시간 이상 계속됐다. 결론은 모든 면에서 오바마와의 결투가 필요하고, 또 싸움을 시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공화당의 이런 계획을 모른 채 임기를 시작한 오바마는 당시 무엇보다 급했던 금융위기 해법부터 공화당의 반대에 부딪혔다. 이후 4년 내내 워싱턴은 공화당과 백악관의 정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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