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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의 역설

입력
2013.01.17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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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승패의 99%를 좌우하는 건 무기다. 전략, 지휘, 리더십, 용기, 규율, 보급, 조직은 무기의 우월성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런 것들은 기껏해야 전력의 1%를 차지할 뿐이다." 20세기 초 영국의 군사학자 존 F.C. 풀러의 말이다. 일찌감치 육상전투에서 탱크 등 기동기갑전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느라 한 말이어서 좀 지나치긴 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다. "정신전력 강조는 좋은 무기를 줄 수 없는 가난한 나라 지휘관의 핑계"라는 말도 있다.

■ 모든 국가가 첨단무기 확보에 목 매는 이유지만, 문제는 너무 큰 비용이다. 지금도 공군이 운용 중인 1970년대 F4, F5형 전투기 도입가격이 대당 200만 달러 남짓이었다. 기술과 장비 수준으로 보아 비교할 건 아니지만, 어쨌든 지금 가치로 따져도 200억 원은 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차기전투기(FX) 후보기종의 대당 값은 1,600~2,700억 원이다. 이런 식으로 새 정부 5년간 신무기 확보에 소요되는 돈이 70조 원이다.

■ 이번에 해군의 해상작전헬기 기종이 당초 확정적으로 알려진 미국산 '시호크(MH-60R)'에서 영국산 '와일드캣(AW-159)'으로 바뀌어 결정됐다. 무장ㆍ작전능력과 출력ㆍ성능에서는 분명 시호크가 낫지만 너무 비싼 가격 때문에 막판 탈락했다. 당연하게 여겨져 온 미국무기 도입 전통이 결정적으로 깨진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산 무기의 우세가 점쳐지던 차기전투기, 공격헬기, 고고도무인정찰기 사업에도 변수가 커졌다는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 압도적인 무기체계는 전투에서의 우위 이전에, 아예 적의 전쟁의지를 꺾는 효과를 갖는다. 이렇게 해서 희생을 피할 수 있는 숱한 인명의 가치는 좋은 무기에 더 들이는 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는 주장도 있다. 어쨌든 불투명한 한번의 사용 가능성 때문에 새 무기는 끊임없이 만들어지지만, 대부분이 단 한번도 쓰이지 못한 채 폐기된다. 인류의 모든 생산물 중에서 이만큼 비효율적이고 낭비적인 것도 없다. 어쩌면 비쌀수록 제 값 못하는 무기의 역설이다.

이준희 논설실장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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