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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경제보다 더 큰 탈세의 구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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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경제보다 더 큰 탈세의 구멍

입력
2013.01.17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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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새누리당은 대선 공약을 준비하면서 국내 지하경제 규모가 372조원이라고 공개했다. 이는 이제까지 발표된 추정치 가운데 가장 큰 규모였다.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세금을 거둬들일 수 있는 세원이 이렇게 많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어서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활동을 통해 어느새 우리나라 지하경제에 대한 준(準)공인 통계로 자리잡았다.

372조원은 오스트리아의 지하경제 분석 전문가 프리드리히 슈나이더 빈츠대학 교수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지하경제 규모 추정 모델에 지난해 우리나라 GDP를 대입해 나온 수치로 알려져 있다. 슈나이더 모델은 지하경제 규모를 간접 추정할 수 있는 경제지표에다 세율과 규제 강도 같은 탈세 유발 요인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만든, 복잡하면서 다소 주관적인 공식이다. 안종석 한국조세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슈나이더가 산정한 우리나라 지하경제 규모는 과장됐다"고 본다. 슈나이더 모델을 응용해 안 위원이 산출한 국내 지하경제 규모(2008년 기준)는 17.1%로 슈나이더가 발표한 28%나 새누리당의 24%보다 훨씬 적다. 게다가 그 비중도 1990년대 이전 GDP의 30% 수준에서 1990년대 25% 등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추세다. 이는 새 정부의 지하경제 양성화가 자칫 중소 자영업자 위축 등 부작용만 낳고 세수는 기대만큼 늘리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반면 급속하게 커지고 있는 조세 구멍도 있다. 바로 역외탈세다. 영국 의회 기구로 출범해 비정부단체(NGO)로 활동 중인 조세정의네트워크(TJN)는 지난해 7월 "한국의 해외은닉 재산은 1970년부터 2010년까지 총 7,790억 달러(약 823조원)로 중국 러시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자 국세청은 내부적으로 TJN 보고서의 타당성에 대해 검토했다. TJN의 국가별 해외유출자본 추산 공식은 단순하다. 특정기간 동안 국내로 유입되는 외화의 양과 공식 외화 사용량의 차액을 불법적으로 역외 유출된 돈으로 보는 것이다. 국세청은 TJN의 공식이 우리나라처럼 대외의존도가 높은 나라에 적용됐을 때 불법 유출 규모가 과다 산정된다고 결론지었다. 이런 문제점을 보완해 국세청 자체적으로 해외유출 자산 규모를 산출했는데, 공식 발표되지는 않았으나 2,000억~3,000억 달러(약 210조~317조원)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국내 지하경제의 규모를 넘어서는 것이고, 더욱이 국가간 자본 이동이 빠르게 자유화하면서 불법 해외 유출 자본의 규모도 계속 커질 가능성이 높다.

세계화의 조류 속에 대부분 국가들은 '2중과세 방지 협정'을 맺고 있는데, 조세피난처가 늘어나면서 이 협정은 기업들에게 어느 나라에도 세금을 안내는 '탈세의 구멍'이 되고 있다. 최근 구글 애플 아마존 스타벅스 등 초일류 기업들이 이를 이용해 세금을 한 푼도 안내거나 터무니 없이 적게 낸 것으로 드러나 미국 유럽 정부와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우리나라에서도 경고음이 잇따르고 있다. 대기업 분석사이트 재벌닷컴은 자산순위 30대 기업이 조세피난처에 설치한 해외법인이 2,224개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정성호 민주통합당 의원은 수출입은행 통계를 분석해 삼성이 케이먼 제도에 4,280만 달러를 투자하는 등 최근 대기업들의 조세피난처 투자가 늘고 있다고 폭로했다.

그렇다고 섣불리 우리 정부가 단독으로 역외탈세 단속에 나서기는 힘들다. 일부 국가만 역외탈세 추적에 나선다면, 돈은 감시망이 덜한 나라로 숨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달 러시아에서 개최되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는 이 문제에 대한 국제공조를 주요 의제로 다룰 예정이다.

세금이 무거워지고 이를 걷는 그물망이 촘촘해질수록 벗어나려는 부자나 기업들의 노력도 더 치열해진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국제자본 유치를 위해 문턱 낮추기 경쟁을 해왔던 각국 정부들이 이제는 세수를 늘리려고 감시 강화에 나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정영오 경제부 차장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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