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정규직 노조 기득권 고수… 정치권 비판에만 그쳐… 대기업 노동운동 한계●은수미 민주통합당 의원자유로운 정리해고 방지가 일자리 지키는 핵심… 정부의 실행의지 중요●권영국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장정리해고는 최후의 수단… 사회보장제도 등 통해 충격 흡수·재교육 꾀해야●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외국도 도급·사내하청 써 차별·고용불안 요인… 제도적 보완 장치 필요
법과 원칙이 통하지 않는 노동현장, 대화와 타협이 실종된 노사관계가 우리 사회의 불안요소로 비화하고 있다. 노사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좌절한 노동자들은 철탑에 오르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고 기업 살리기에 분초를 다퉈야 할 경영진은 정치권에 불려 다니느라 시간을 낭비한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의 김성태(새누리당) 은수미(민주통합당) 의원, 노동법 전문가인 박지순 고려대 교수, 노동ㆍ인권 변호사인 권영국 변호사가 16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나 비등점까지 끓어오른 우리 노사관계의 갈등의 원인을 분석하고 해법을 이야기했다.
_노동자들의 자살, 고공농성 등 노사갈등이 극에 달했다. 노사가 대화의 장에서 벗어나 정치권만 바라보고 있다. 왜 이런 사태에 이르렀을까.
▦은수미 민주통합당 의원= MB 정부 5년 동안 노사관계의 기본틀인 노동기본권이 훼손되거나 유린된 것이 문제다. 불법적인 노조파괴는 일종의 비즈니스가 됐을 정도다. 행정당국은 불법을 처벌하지 않는다. 준사법기능을 가진 근로감독관이 1,000명이나 되는데, 노조파괴 시나리오가 언론에 폭로되고 경영진이 국회 청문회에 불려나오니까 고용부는 감독한다고 나서고 검찰은 기소한다고 뒷북을 치고 있다. 노동자들이 누구를 믿고 살 수 있겠나. 박근혜 당선인은 정부를 믿어도 된다는 신뢰를 보여줘야 한다.
▦권영국 변호사= 동감한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세운 현 정부가 반(反)노동 정책으로 일관한 것이 원인이다. 이번 정부에 도입된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제도를 악용해 사용자들이 교섭을 거부하는 일이 많았다. 정부의 친 기업 정책을 믿은 것이다. 헌법상 노동기본권은 보장돼있으나 권리 행사가 차단돼 고공농성이라는 극단적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박지순 고려대 교수= 정리해고, 파견 등은 자본주의에서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일이다. 그러나 고공농성이나 자살 등은 정상적인 민주국가, 법치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노동단체, 노조가 이런 문제를 대변하고 입법화로 연결해야 하는데 이게 작동이 안된 것이 원인이다. 우리 노동운동이 근로자의 대표자 역할을 제대로 해왔느냐, 갈등관리를 잘 해왔느냐에 대해 회의적이다. 노동운동 리더십의 위기라고 본다.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의 한계다. 가령 현대차 정규직 노조가 4,5년 전에 사측에 사내하청 남용과 차별을 적극 반대했으면 극단적인 고공농성까지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정규직 노조들은 기득권을 하나도 내놓지 않고서, 국회 앞에서 시위하고, 정치권이 해결해주지 않으면 정치권을 비판하는 식으로 조합원들에게 면죄부를 받는다. 노동운동이 운동성을 잃고 면죄부만 받으려 한다.
_현대차 사내하청 문제, 비정규직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법과 원칙이 중요하지만, 이에 따라 해결하기가 요원해 보인다.
▦김= 기업의 경쟁력을 고려하면 무조건 법률로 사내하청이나 비정규직을 규제할 수는 없다. 불법파견인지 아닌지 법률적 판단을 구하는데도 7,8년이 소요됐는데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소모된 것 아닌가. 글로벌 경제체제에서 파견의 사유를 제한하는 (야당의) 방식은 구시대적이다. 대신 기업이 유연성과 낮은 임금 두 마리 토끼를 쫓지 못하게 하는 것이 새누리당이 제정하려는 사내하도급 보호법이다.
▦권= 한 사업장에서 생산과 공정이 연결돼 있는데 독자적인 업무를 맡는 도급이 가능한가? 실제로는 원청의 지배력에서 벗어날 수 없어 불법 파견에 해당하는데도, 적법한 사내하청이 존재할 수 있다고 가정해 사내하도급 보호법을 제정해서는 안 된다. 논리적 모순이다. 경기가 변동하면 잘랐다 늘렸다 할 수 있는 게 타당한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이익을 함께 나눈다면 불이익도 함께 감수하는 것이 경영의 책임이다.
▦박= 제조업에서 사내하청은 관행으로 자리잡고 있다. 해외에서도 기업의 경영합리화, 비용절감 측면에서 도급이나 사내하청을 쓴다. 독일 BMW 라이프치히 공장은 이 비율이 40~50%(현대차 약 30%)라는 보도도 있다. 모든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되면 이상적이지만 경영자가 그런 구조를 쉽게 선택할 수 없다. 글로벌 경쟁 속에서 유연성이 없으면 바로 위기에 빠진다. 전체 노동자를 모두 다 정규직화하라는 것이 맞쩝?생각해봐야 한다. 차별이나 고용불안을 어떻게 제도적으로 보완할지는 정치가 해줄 몫이다.
▦은= 불법파견이 관행이라는 것이 재계의 논리인데, 그럼 도둑질도 관행적으로 이뤄졌다고 묵인할 수 있느냐. 현대차의 사내하청은 불법 판결이 내려졌고, 이에 대한 징벌부터 우선 해야 한다. 징벌 없이 차별처우만 없애주겠다는 발상은 '현대차 편들어주기' 오해를 받을 것이다.
_한진중, 쌍용차 사태에서 보여주듯 정리해고 문제가 올해도 첨예한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이는데.
▦은= 우리나라는 법원이 미래의 위기까지 '긴박한 경영상 필요'로 인정하고 정당화시켜줄 정도로 정리해고가 자유로운 나라다. 정리해고 때문에 장기농성중인 사업장이 지금도 50곳이 넘는다. 박 당선인이 일자리 정책으로 '늘ㆍ지ㆍ오(늘리고 지키고 올린다)'를 강조하는데 자유로운 정리해고를 막는 것이 일자리를 지키는 핵심이다. 여야가 정리해고법을 고치겠다고 합의했지만, 정부의 의지도 중요하다. 박 당선인이 재계에 정리해고를 자제해달라고 한 말씀을 기억한다. 서로 살기 위해서라도 이래서는 안 된다. 쌍용차 국정조사의 필요성도 언급해 주셨으면 한다.
▦권= 해고 소송을 맡으면 징계해고는 10건 중에 절반 정도 해고자가 이기지만 정리해고는 10건 중에 1건도 이기기 어렵다. 그러니 정리해고가 남발된다. 사업장 상당수는 노조를 탄압하거나, 2세에게 물려주려 할 때 노조의 비판을 잠재우기 위해 정리해고를 한다. 기업의 경영이 유지되기 어려울 때만 '최후의 수단'으로 정리해고가 인정돼야 한다. 불가피하게 정리해고를 해야 한다면 사회보장제도로 어떻게 흡수하고 재교육할지 보완해야 한다. 뒤로 미룰 일이 아니다.
▦박= 외국에서도 경영상 판단은 사업주가 하는 것이 기본이다. 만약 법을 고쳐 정리해고의 사유를 일일이 나열한다면, 기업이 현실적으로 이런 사유에만 맞춰 정리해고를 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법을 고쳐야 한다면 우리 법원이 해석을 포기하고 있는 '해고회피노력' 조항, '근로자 대표와의 성실한 협의'조항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설사 입법화가 안 돼도, 이런 노력만으로도 법원이 적극적으로 해석할 것이다. 불필요한 정리해고에 대한 비용이 높아지면, 합리적 사업주는 정리해고를 철회할 것이다.
▦김= 박 당선인과 2시간이 넘게 정리해고자, 비정규직 등의 이야기를 해봤는데, 노동운동가 출신인 나보다도 관심이 많았다. 자연재난이 나면 재난지역으로 선포하듯이 어떤 지역이나 사업장의 대규모 구조조정이 예정되면 '고용재난지역'으로 선포해 생계비 지원이나 직종 전환 등을 지원하는 제도를 추진할 예정이다. 정리해고의 사유를 좀더 강화하는 관련법 개정안 발의도 준비 중이다. 쌍용차 국정조사는 해야한다.
_1998년처럼 노사정 대타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어떤 식으로 이뤄져야 할까.
▦은= 이상적으로는 사회적 통합을 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여건이 돼있지 않다. 부부관계에서도 대화하려면 최소한 서로 부부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사회적 대타협은 노사정이 자신의 역할을 하면서 서로를 파트너로 인정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한쪽은 거리로 내몰고 한쪽은 쫓겨나 있는데 대타협이 가능할까. 만약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이 불법을 저질렀다면 경총이 파트너로 인정하겠나. 그런데 왜 노조는 불법을 저지른 재벌과 마주 앉아야 하나. 사회적 대타협 정신은 살아있다. 그러나 노사정이 먼저 할 일은 노동기본권을 세워주고 노사협력을 잘하는 사업체들을 지원하는 일이다.
▦박=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화와 타협은 해야 한다. 노사정위원회가 노사의 이해를 명확하게 이야기할 기구가 됐으면 한다. 1층이 근로기준법, 2층이 노사협의회, 3층이 노동조합, 4층이 노사정위 등 4층의 협의구조가 이뤄지는 타협방안을 생각한다. 이상적이겠지만 4층의 노사정위가 개별기업을 윽박지르고 압력을 가할 수 있는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
▦권= 노동문제를 대타협할 수 있는 기구의 존재는 필요하다. 그러나 일방적 대타협을 강요해선 안된다. 정부와 경영계는 먼저 지금까지 노동정책이 편향적이었음을 시인해야 한다. 노동주체가 우리사회의 중요한 주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MB 정부는 민주노총, 전교조, 공무원노조 모두 인정하지 않고 권리를 행사하려는 것을 다 짓밟았다. 억압적 노동정책을 시인하고 이들의 주체성을 회복해줘야 한다. 먼저 노사정 타협을 말하는 것은 앞뒤가 바뀌었다.
진행=이왕구기자 fab4@hk.co.kr
정리=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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