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내부에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대선 공약 이행을 두고 속도 조절론, 출구 전략론 등이 제기되고 있다. 국민과의 약속도 중요하지만 요즘 경제 상황에서는 증세 없이 조 단위의 복지 공약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무리인 만큼 우선순위를 정해 추진하자는 게 속도 조절론이다. 약속은 기본적으로 지키되 공약 이행 시기와 지원 규모 등을 조절하자는 것이다. 일부 공약에 대해서는 유보론까지 거론된다. 출구전략은 유보와 속도 조절방안을 모두 검토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야권에선 새 정부가 출범하기도 전에 공약 이행 방안 대신 유보 가능성부터 꺼내는 것에 대해 "국민을 우습게 보는 말장난"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새누리당 심재철 최고위원은 1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출구전략을 거론했다. 그는 "예산이 없는데 '공약이므로 공약대로 하자'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돈 때문에 공약 이행이 현실적으로 어려운데 '과거 관행이다. 국민 관점이 아니다'고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주장했다.
정몽준 전 새누리당 대표는 16일 최고위원·중진연석회의에서 속도 조절에 방점을 뒀다. 그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초대 비서실장을 지낸 램 이매뉴얼 시카고 시장의 책 내용을 소개하면서 "이 책에선 '미국의 정당이 선거 때 내놓은 정책을 다 집행하면 미국은 확실히 망할 것'이라고 썼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어 "인수위가 공약의 자구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우선순위를 정해 추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친박계 김재원 의원은 라디오에 출연해 "공약을 지키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모든 공약을 그냥 무조건 지키겠다고 꼭 하는 것이 능사라고 보지는 않는다"고 출구전략을 거론했다.
이달 초 "선거 기간 너무 세게 나갔던 부분에 대해서는 대선 공약의 취지는 살리더라도 (내용의) 경중을 달리할 수 있고 (공약 이행) 시기를 조절할 수 있다"고 밝힌 이한구 원내대표의 속도조절론이 여권 내에서 본격 점화되는 양상이다.
이 같은 주장들은 공약 실천을 위해 막대한 예산이 수반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증세 없이 재정건전성과 복지 확대라는 두 마리 토끼 잡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런 가운데 새누리당 일부에선 "석유 거래를 자동 전산화하면 가짜 석유 거래를 막아 1년에 약 5,000억원을 세수로 확보할 수 있다"는 등의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한 세수 확보 방안도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일부에선 "각 부처가 공약 이행이 어렵다고 보고한 데 대해 박 당선인이 '불편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경고할 게 아니라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공약 실천에 도움이 될 것"이란 주장도 제기된다.
장재용기자 jy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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