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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지린성 지안서 고구려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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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지린성 지안서 고구려비 찾았다

입력
2013.01.16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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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왕비의 일부와 유사한 내용이 담긴 고구려 비석이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시에서 발견됐다. 왕릉 관리인 규정을 담고 있는 이 비는 지안의 광개토대왕비, 충주의 중원 고구려비에 이어 세번째 고구려비로 관련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중국 국가문물국(문화재청에 해당)이 발행하는 '중국문물보(中國文物報)'는 한 주민이 지난해 7월 29일 지안시 마셴(麻線)향 마셴강변에서 고구려 비석을 발견했다고 지난 4일 보도했다. 이 언론은 국가문물국이 비석에 새겨진 글자를 정밀 조사한 결과, 고구려 비석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비석은 윗부분과 아랫부분이 떨어져 나갔으며, 높이 1m73cm, 너비 60.6~66.5cm, 두께 12.5-21㎝, 무게는 464.5kg이다. 예서체로 총 218개 글자가 비석 정면에 새겨졌는데, 판독이 가능한 글자는 140자였다.

문물보에 따르면 왕즈민(王志敏) 통화(通化)시 문물호보연구소장은 "비석의 재료나 모양으로 볼 때 고구려 호태왕(광개토왕) 이전에 세워진 비석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안 고구려비 보호 연구팀은 호태왕에서 장수왕 시기의 비석으로 결론을 지었다.

겅톄화(耿鐵華) 퉁화 사범학원 고구려 연구원장은 "호태왕비 제4면 기록을 보면 호태왕 이전엔 묘지를 지키는 사람의 실수가 많아 호태왕 이후 왕묘 앞에 비석을 세우게 됐다는 얘기가 있는 걸 볼 때 이 비석은 호태왕이 세운 비석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겅 원장은 "고구려 호태왕비 발견 이후 135년만의 가장 큰 중대 발견"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1880년에 발견된 광개토대왕비, 1979년에 발견된 충주 중원고구려비(국보 제205호)에 이어 세 번째로 발견된 이 비에 대해 고대사학회는 획기적인 발견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관련학회 관계자들은 비석이 고구려 왕가 공동묘지인 마셴구 고분군 앞에 세워졌다는 점에서 '선왕들의 무덤 앞에 비석을 세우라'는 광개토왕의 유언에 따라 만들어진 비라고 추정했다.

여호규 한국외대 사학과 교수(한국고대사학회 총무이사)는 "이 비석은 광개토왕 사후 2년 뒤인 414년에 아들인 장수왕이 지안시 우산화 고분군 앞에다 세운 광개토왕비와 마찬가지로 고구려 왕릉 관리인들의 복무규정을 담은 수묘비(守墓碑)로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여 교수에 따르면 이 비에는 광개토왕비문과 유사한 문구가 있다. 첫머리에 나오는 '시조 추모왕이 나라를 창건하니라(始祖鄒牟王之創基也)' 문구와 '하백의 손자(河伯之孫), 그리고 그런 추모가 나라를 일으켜 (왕위가) 후대로 전해졌다', '부유한 자들이 (왕릉을 관리하는 사람인) 수묘인(守墓人)들을 함부로 살 수 없다'는 등의 문구는 광개토왕비문에도 있다는 것이다.

광개토왕비는 고구려 시조 추모왕부터 유류왕, 대주류왕에 이르는 3대의 왕위계승과 광개토왕의 행장(行狀)뿐만 아니라 정복활동의 성과를 묘사하고 있다. 비문 말미에는 광개토왕과 그 이전 역대 왕릉을 안전하게 수호하기 위해 기존의 수묘제(守墓制)를 개혁했다는 내용 등을 상세히 새겨 놓았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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