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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따라질, 고단한 여정 뿌리치기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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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따라질, 고단한 여정 뿌리치기엔…"

입력
2013.01.16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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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이 불타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이 타오르던 2008년 끝자락에 노래 한 곡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장기하와 얼굴들이라는 낯선 이름의 밴드가 부른 '싸구려 커피'. '88만원 세대'의 빈곤함을 달래준 이 노래는 산울림을 연상시키는 복고 사운드와 유머러스한 가사로 인디 음악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붕가붕가레코드의 마지막 앨범이라고 생각했던 고건혁(32) 대표에게도 희망의 불빛이 타올랐다. 비주류의 반란이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이다.

'싸구려 커피'가 나온 지도 벌써 4년. 장기하와 얼굴들은 이후 2장의 정규 앨범을 내놓으며 단숨에 인기 록 스타가 됐고, 2009년 한국대중음악상에서 3관왕, 지난해 시상식에선 4관왕의 영예를 안았다. 지상파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연예인'이 된 장기하는 현재 라디오 프로그램 DJ로 활약하며 대중과 함께 호흡하고 있다.

장기하는 스타가 됐지만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을 표방하는 붕가붕가레코드는 여전히 딴따라질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고민 중이다. 14일 만난 고 대표는 고민의 여독을 담은 조그마한 여행가방과 함께 이동 중이었다. 제주도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학업을 위해 다시 대전으로 내려간다고 했다. 제주에서 대전까지, 딴따라질을 지속시키기 위한 고민과 실험의 여정은 길고 고단하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고 대표의 10대를 지배한 건 인디 록이었다. 잠시 밴드를 만들어 보기도 했지만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알고 그만뒀다"고 했다. 2000년 서울대 심리학과 입학 후 학내 온라인 소식지 편집장을 하면서 장기하, 윤덕원(브로콜리 너마저), 송재경(9와 숫자들), 깜악귀(눈뜨고 코베인) 등과 어울리며 연주보다는 기획과 제작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단다.

"졸업하고 난 다음 그 친구들과 작업을 해보고 싶어서 붕가붕가레코드를 만들었습니다. 손익분기점을 맞추기 위해 수작업으로 공시디(CD)를 구워서 팔았죠. 그러던 중 이대로는 도저히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만두려던 무렵 장기하가 제대를 했고 마지막으로 한 번 해보자고 만든 게 '싸구려 커피'였습니다. 500장을 예상했는데 1만 5,000여장이 팔렸어요."

고 대표는 2000년대 들어서 홍대를 중심으로 한 인디 음악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외국 음악의 스타일 베끼기에 급급하고 소통이 힘든 음악"에서 벗어나고자 "유행하는 스타일을 재현하기보다 대중과 소통하면서도 한국이 아니면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음악"을 목표로 했다. 전업 음악인이 되기 위해 붕가붕가레코드에서 독립한 브코롤리 너마저가 한 예였고, 장기하의 얼굴들은 또 다른 예였다.

장기하와 얼굴들이 거둔 기대 이상의 성공에도 고 대표는 "잔치는 이제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대중과 미디어의 관심이 계속 이어질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는 판단에서다. 회사에 소속된 다른 밴드들의 돌파구를 찾는 건 여전히 어려워 보였다.

"계속 고민했던 게 다른 팀들을 일정 수준까지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돌이켜보면 실패한 것 같아요. 아직도 장기하와 얼굴들과 다른 밴드들의 격차가 커요. 장기하가 벌어놓은 걸 계속 까먹고 있는 거죠."

붕가붕가레코드엔 상근직원 1명을 제외하면 모두 '투잡'을 하고 있다. 딴따라질만으론 생계를 꾸려나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고 대표도 사업의 다각화를 꾀하고 있다. 지난해엔 동향 출신의 업계 관계자들과 함께 제주 관광과 공연, 강연 등을 결합한 문화 투어 상품 '그레이트 이스케이프 투어 인 제주'를 내놓았다. 그는 "음악 외의 콘텐츠가 가진 매력을 통해 음악을 들려주려 한 것이었는데 현재로선 수익을 기대하기 힘든 구조"라고 했다.

고 대표는 현재 카이스트에서 컴퓨터공학과 사회학을 전공하고 있다. 음악이 SNS를 통해 사람들 사이에서 퍼져나가는 현상에 특히 관심이 많다. 세계 음악시장의 평균치보다 록 음악의 지분이 매우 낮은 국내 음악시장에서 비주류로 생존하기 위해 이론과 실천을 병행하려는 노력이다. "회사 일은 원격으로 한다"는 그는 앞으로 "주류와 비주류 사이의 허리를 두껍게 하는 브로커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장기하의 이름이 붕가붕가레코드의 그것보다 커지면서 고 대표의 고민은 다시 시작됐다. '제2의 장기하'를 만들기 위해 원점에서 다시 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비주류의 숙명이란 그런 것이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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