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유방성형이 시작된 것은 1950년대다. 동시에 아름다운 가슴을 희망하는 여성들에게는 '수난의 역사'가 도래했다. 당시 유방성형은 가슴에 고무나 플라스틱을 넣을 정도로 무모했다. 당연히 유방이 딱딱해지는 부작용이 따라왔다. 액체실리콘을 넣었던 1960년대에는 액체실리콘이 유선(乳腺) 곳곳에 퍼지면서 살이 썩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결국 많은 여인이 가슴을 도려내며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그 대안으로 고안된 게 실리콘겔이다. 실리콘 고무백 속에 실리콘겔을 넣어 가슴근육 밑에 삽입하는 시술이다. 감촉이 부드럽고 모양도 아름다웠다. 실리콘겔 대신 생리식염수를 넣기도 했는데 감촉이나 모양이 실리콘겔만 못해 거의 쓰이지 않았다.
1970년대에는 좀더 얇은 실리콘 고무백이 나왔다. 이젠 겉에서 만져도 전혀 백이 들어간 촉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질이 향상됐다. 실리콘백 외곽을 폴리우레탄으로 한 번 더 코팅해 강도를 높인 제품도 나왔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 '날벼락'이 떨어졌다. 백 속에 든 실리콘이 얇은 막을 뚫고 새어나는 일이 발생했다. 폴리우레탄 코팅 백도 마찬가지였다. 이 때문에 1987년에는 피부 조직과 마찰을 일으켜도 촉감이 피부와 거의 비슷한 개량된 실리콘백이 등장했다. 섬유처럼 촘촘하게 짜여져 매우 강하면서도 표면이 매끄럽고 부드러운 장점이 부각됐다.
그러나 문제는 계속됐다. 1980년대 후반에 이르자 1985년 이전에 유방확대술을 받은 수 천명의 여성에게서 실리콘겔이 유방으로 누출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여성들은 '겔 유출'로 인해 류마티스관절염, 만성피로, 기억감퇴, 암(백혈병 유방암), 탈모, 두통 등을 호소했다.
피해 여성들은 실리콘겔을 만든 다우코닝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고 마침내 1991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한 여성이 재판에 승소해 다우코닝사로부터 730만 달러(당시 환율로 약 55억원)의 보상비를 받아냈다. 이듬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실리콘겔 삽입술 전면 금지를 법제화했다. 이후 실리콘겔 제조사에 대한 소송이 세계 곳곳에서 이어졌다. 하지만 겔 유출이 질병을 직접적으로 초래한다는 근거가 희박해 유럽에서는 사용금지 조치를 내리지 않았다. 이 때문에 많은 유럽 여성이 실리콘겔을 가슴에 이식하는 모르모트(생체실험 대상자)가 됐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인기 있었던 3대 성형수술로는 (복부)지방제거, 눈꺼풀 주름제거에 이어 유방성형술이 꼽혔다. 우리나라에서는 유방성형술의 99%가 유방확대지만, 서구에서는 오히려 유방축소술의 비중이 상당히 높다. 식단의 서구화로 유방암이 늘면서 암 절제 후 미용 차원에서 재건하는 수술도 늘고 있다.
이처럼 유방성형은 '수난의 역사'다. 그러나 이제는 여성들이 수난을 겪지 않아도 된다. 자신의 복부와 허벅지 등에서 뺀 자가지방을 가슴에 이식하는 유방성형술이 나왔기 때문이다. 부작용이 없고 이물감이 느껴지지 않으면서 자연스러운 모양새와 촉감을 지닐 수 있게 됐으니 기쁜 일이다.
자가지방이식 가슴성형은 지방세포 속에 들어 있는 줄기세포의 조직재생능력을 최대한 살리면 이식한 지방의 60∼70%가 흡수 소멸되지 않고 반영구적으로 남는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아름다워지려는 여성의 욕구 덕분에 의학기술 또한 급속도로 발전했다.
강태조 유진성형외과 원장(성형외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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