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인간성을 되찾고 정감 있는 공동체를 복원하는 문화적 충격이 되었으면 합니다."
'섬진강 시인'으로 유명한 김용택(64)씨가 그동안 여러 매체와 책에 흩어져 있던 산문들을 묶어 8권짜리 (문학동네 발행)를 출간했다. 한수 형님, 풍언이 양반 등 그의 글 속 숱하게 등장한 마을사람과 풍경을 설명하며 책을 아우르는 시리즈 1,2권은 새로 쓴 글이다. 그의 고향은 전북 임실군 덕치면 장산리 진메마을로, 1982년 시 '섬진강 1'로 등단한 이후 30년 넘게 줄곧 고향 이야기를 써 왔다.
김 시인이 산문을 쓴 것은 '시로는 쓸 수 없는 마을 이야기들을 하루 원고지 스무장 이상씩 써보자'는 장난스러운 마음이 계기였지만, 시인이 태어난 1948년부터 2012년까지 섬진강의 한 작은 마을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담아낸 작업은 때묻지 않은 고향의 원형 섬진강을 되살리는 의미 있는 작업이 됐다.
책에는 진메마을의 산과 강, 징검다리, 한평생 가난과 풍파 속에서도 함께 먹고, 일하고, 놀던 진메마을 사람들, 그리고 그가 가르친 초등학생들의 모습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15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씨는 "한때 35가구까지 번창한 진메마을은 현재 10가구만 살 정도로 축소돼 상주인구는 열다섯밖에 안 된다"며 "엮어 놓은 책을 다시 보니 먼저 간 사람들이 꽤 많더라"며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자신을 "농촌이 자본에 휘둘리지 않고, 자연과 인간이 완전하게 고용된 삶을 살던 시절 농촌공동체의 원형을 지켜보아 온 사람"이라고 표현한 김씨는 산업화와 이농으로 그 원형이 파괴되는 것에 안타까워했다. "개인적으로는 살고 싶은 곳에서 한평생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나고 자란 곳에서, 내가 다닌 초등학교에서 평생 아이들을 가르치며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고향을 떠나 서울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한번도 한적이 없습니다."
그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 된 고향의 모습은 '징검다리 건너편에 어린 자신을 두고 밭을 매던 어머니의 모습.' 김씨는 "어린 마음에 무서워서 징검다리를 건너지도 못하고 엄마한테 가고 싶어 보채던 나를 죽도록 패 놓아 그 서러움에 강 기슭을 왔다갔다하며 울던 기억이 그것"이라며 다섯 살쯤 되던 해의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농촌 공동체의 복원을 주장하는 '섬진강 시인'으로 한평생 살면서 그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인간'이었다. "인간의 가치가 도회지라는 큰 마을 속에서 사라져 버린 지금, 과연 잘 살고 있는가, 제대로 가고 있는가, 행복한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고 싶었습니다."
교사생활을 마친 후 전주에 거주하면서 고향으로 발길이 뜸했다는 그는 올해 가을쯤 귀향할 계획이다. "군에서 지원하는 작은 학교가 곧 문을 열 텐데 할머니들,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나 벽지 아이들을 대상으로 문학교실을 운영할 생각입니다. 최근에 다시 섬진강 시도 쓰고 있는데, 그건 늙어 죽을 때까지 쓰게 되지 않을까요."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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