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김선욱(25)씨는 "어렸을 때는…"이라는 말을 유독 많이 했다. 2008년 세계적인 음악 매니지먼트사 아스코나스 홀트와 계약하면서 영국 런던으로 이주, 지난해 결혼 등 신상에 큰 변화가 생기면서 음악관도 많이 달라진 듯했다. 3세에 피아노를 시작해 2006년 만 18세로 리즈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을 차지하며 '국내파 신동'으로 알려진 그가 그토록 갈망했던 "나만의 색깔"을 찾는 데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선 모습이었다.
17, 1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정명훈 예술감독이 지휘하는 서울시립교향악단과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를 협연하는 그를 14일 만났다. 이번 공연의 실황 녹음은 도이치 그라모폰(DG) 레이블의 음반으로 발매될 예정이다. 그의 이름으로 나오는 첫 음반이다.
"어렸을 때는 음반을 내고 싶은 욕심이 많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조급한 마음이 사라졌어요. 음반이 있으면 유럽에서 활동하는 데 유리했겠지만 음악관이 어느 정도 형성된 지금이야말로 음반을 낼 적기라고 봐요."
특히 그가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고 믿는 베토벤 레퍼토리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2009년 그는 수원시립교향악단(지휘 김대진)과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전곡(5곡)을 연주했고 지난해부터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32곡) 연주에 도전하고 있다. 지난 연말에는 베토벤 생가인 독일 본의 베토벤하우스에서 초청 공연을 했다.
"베토벤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서양 클래식음악의 중심축이죠. 베토벤을 진지하게 알아가는 자체가 음악을 공부하고 연주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될 거라 생각했어요. 베토벤의 작품은 불필요한 요소가 없이 꽉 찬 질량의 음악 같아요. 그래서 너무 화려해도, 절제해도 안 되죠."
그는 어떤 질문에도 여유로웠다. 지난해 2월 7세 연상의 신부와 런던에서 비공개 결혼식을 올리고 연말에 지인들을 초청해 국내에서 다시 예식을 올렸다. 결혼이라는 인생의 큰 관문을 통과한 그는 "연주가로서, 인간으로서 큰 안정감이 생겼다"고 했다. "인상도 성격도 바뀌었어요. 예전의 저였다면 음반 녹음을 앞두고 지금보다 훨씬 불안해 했을 거예요."
그래도 "음악할 때만큼은 스스로에게 관대하지 않다." 유럽 활동으로 "큰 무대 울렁증"은 많이 극복했지만 연주 직전 느껴지는 극도의 긴장감은 완전히 떨치지 못했다. "준비를 많이 할수록 스스로를 향한 기대가 더 커지기 때문"이란다.
현재 런던 왕립음악원에서 지휘 공부를 하고 있지만 지휘자 김선욱을 보려면 한참 기다려야 할 듯하다. "지휘자로 활동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피아니스트로서의 페이스를 지키는 게 더 중요할 것 같다"고 했다.
"피아노 연주를 일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당분간은 거창한 목표를 세우기보다 주어진 것들을 꾸준히 열심히 하려고 해요. 어렸을 때는 스타의식도 조금은 있었지만 이제 겨우 음악가 인생의 5분의 1 정도 지점에 와 있는 걸요."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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