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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복지'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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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복지'의 그늘

입력
2013.01.15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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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은 전면 무상급식 실현을 필생의 업적으로 여길지 모르겠다. 가난한 학생들에게 눈칫밥을 먹일 수 없다는 그의 목소리는 뜨거웠다. 예산이 부족한데, 행정절차를 손봐서 무상급식 대상 학생들을 드러나지 않게 처리할 수 있는 방법도 있지 않느냐는 주장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마침내 시 예산 지원을 거부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주민투표에서 물리치며 전면 무상급식을 관철해냈다. 정치적으로도 빛나는 승리였다.

하지만 그게 최선이었을까. 전면 무상급식으로 일부 학생들은 그늘진 자의식과 주변의 '낙인'으로부터 일단 벗어났는지 모른다. 그러나 예산이 거기에 집중되면서 당장 시내 초ㆍ중학교의 영어 원어민 교육은 대부분 중단됐다. 학습부진학생을 돕기 위한 보조교사 프로그램도 대폭 축소됐고, 시설개선 예산도 크게 깎였다. 학생들에게 당당하도록 가르칠 수도 있는 가난을 눈가림해주기 위해 서민 학생들로부터 원어민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와, 학습부진을 만회할 기회, 좀 더 쾌적하게 학교생활을 누릴 여지를 빼앗은 셈이 됐다. 예산 현실과 정책 균형 등을 도외시한 곽노현식 도그마로 빚어진 성과 이면의 짙은 그늘인 셈이다.

지난 얘기를 새삼 재론하는 건 복지공약을 관철해 내려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의욕과 소신도 자칫 비슷한 그늘을 드리울 수 있겠다는 우려 때문이다.

지난 대선에서 여야는 사상 유례없는 복지공약 경쟁을 벌였다. '보편적 복지'를 전면에 내건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대대적 공세에 박 당선인도 뒤질세라 '생애 맞춤형 복지'로 맞섰다. 무리수가 이어졌다. 무상보육은 엄마 품에서 잘 자랄 여건이 되는 영유아들까지 굳이 유아원으로 내몰아 초유의 유아원 부족 사태를 빚기도 했다. 예산이 부족해 정부와 지자체의 갈등도 잇따랐다. 하지만 정부의 소득계층별 차등지원 건의는 거부됐고, 전면 무상보육 방침은 대선 이전에 서둘러 확정됐다.

'최소한의 보편적 복지공약'은 더 나왔다. 소득 하위 70%의 65세 이상 노인에게 지급되는 기초노령연금은 기초연금으로 바꿔 연금액을 현행 9만원대에서 두 배 늘려 모든 노인에게 지급키로 했다. 장애인연금도 기초연금에 통합해 역시 최대 20만원으로 두 배 인상키로 했다. 암 등 4대 중증질환은 비급여 부분을 급여화 하는 방식으로 2016년까지 100% 무료진료를 시행하겠다고 했다. 이게 박 당선인의 4대 복지공약이 됐다.

당선 후 예산 문제가 발등의 불이 된 건 당연하다. 집권 5년간 복지공약 이행 예산 134조원을 짜내는 게 시급하게 됐다. 지하경제 과세 강화와 세금 감면 축소로 53조원을 마련키로 한 건 그렇다 쳐도, 나머지 81조원의 조달을 위해 대통령직인수위는 각 부처에 세출 조정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관료들은 벌써부터 비명과 한숨이다. 단순히 쳐도 연간 10조원 이상의 예산을 다른 항목에서 빼와서 돌려 막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더 어려운 점은 기초연금이나 무상보육 등의 예산은 노령인구의 급증과 보육 가수요 폭증으로 실제 예산 소요액이 2배 넘게 늘어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 경우 예산 조달의 어려움은 점점 더 가중될 수밖에 없다.

세출예산을 줄이라면 정부는 어쨌든 숫자를 맞춰 낼 것이다. 하지만 관료들이 스스로 공무원 수나 월급, 연금을 줄일 리 없다. 결국 일은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으로 흐를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4대 복지 이행이라는 빛나는 성과의 이면에서 수많은 국민이 소리 없이 고통을 감당해야 하는 짙은 그늘이 드리워질 가능성이 크다.

박 당선인의 과묵한 진심을 존중한다. 관료들의 비명에 엄살이 섞였다는 점도 짐작한다. 하지만 공약 이행이 도그마가 돼선 안 된다. 박 당선인이 가진 최대의 정치적 자산은 현실을 살펴 사정을 설명하면 아량 있게 수용해줄 수 있는 다수 유권자들의 지지가 있다는 것이다. 공약에 무리수가 있다면 겸허히 국민의 양해를 구하는 용기를 내기 바란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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