使 "기업노조 가면 혜택"복수노조로 조직 무력화… 용역 폭력도 서슴지 않아실제 경영 어려울 때도 勞, 구조조정 협상 떼쓰기회사 운명 벼랑끝 내몰아불신·대립지속 '치킨게임' 사회적 비용 갈수록 커져
"한진중공업 기업별 노조 조합원 100명이 복직할 때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조합원은 5명만 복직합니다. 회사가 노조 별로 고용 차별을 하니까 조합원들이 흔들리는 겁니다."
박성호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부지회장은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박 부지회장은 "(노조를 압박하는) 사측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은 예전부터 있었지만 같이 일했던 동료들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복수노조 제도가 도입되면서 노조를 완전히 무력화시키고 있다"며 "고(故) 최강서 조합원도 사내에서 복수노조 간부들을 만나면 대놓고 따질 정도로 배신감과 상실감이 컸다"고 전했다.
금속노조 한진중지회만 있던 한진중공업에 노조가 하나 더 생긴 것은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사측으로부터 정리해고자 복직 등을 약속 받고 크레인을 내려온 지 두 달만인 지난해 1월이었다. 기업별 노조인 한진중공업 노조가 새로 생긴 후 지회 조합원은 썰물처럼 기업 노조로 옮겨갔다. 지회에 따르면 기업 노조는 노동자들에게 "회사가 생계비 1,000만원을 대출해준다. 기업 노조원은 상환하지 않아도 된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고, 휴직한 노동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기업 노조로 옮기면 더 빨리 복직시켜주겠다"고 약속했다. 850명에 달했던 지회 조합원은 현재 204명으로 줄어든 상태다. 조합원이 547명(전체 노조원의 73%)으로 불어난 새 노조는 지난해 7월 대표 노조가 돼 교섭권도 가져갔다. 박 부지회장은 "사측이 합의안과 달리 158억원의 손배소를 강행하고 지회가 운영하던 소비조합까지 폐쇄하는 등 전방위적으로 노조를 탄압했다"말했다.
사측 관계자는 "조합원들이 스스로 노조를 결정한 것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지난해 크레인 농성과 희망버스가 전국적 이슈로 확대되면서 복직에 합의하게 된 데 대해선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이 관계자는 "한진중은 민간기업인데 마치 공기업인 것처럼 외부 개입이 너무 많다. 지금은 회사 정상화를 위해 한마음으로 생존을 위해 노력해야 하기 때문에 노조가 자꾸 외부세력을 끌어들여서는 안 된다"며 지회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노조 파괴에 결사 투쟁으로 악순환
복수노조 제도 도입 후 교섭권을 뺏기며 고사되고 있는 노조는 한진중지회만이 아니다. 노사 간 갈등이 심한 사업장이면 속속 복수노조가 들어섰다. 2011년 7월 제도 시행 후 처음 복수노조가 들어선 기업은 직장폐쇄와 용역 폭력 등으로 심한 노사 갈등을 겪던 경북 구미의 반도체부품 생산업체 KEC였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회사가 주도적으로 복수노조를 만들어 커지면 이 노조로 창구를 단일화해 기존 노조를 파괴하는 방식으로 복수노조 제도를 악용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복수노조는 지난달까지 1,058개가 설립됐다.
복수노조와 함께 사측의 의도적인 공장폐쇄와 용역업체를 동원한 사적 폭력은 노동계가 꼽는 전형적인 노조파괴 수단이다. 교섭을 결렬시켜 노조 파업을 유도한 뒤 공장을 폐쇄하고 용역들을 동원해 폭력으로 진압하는 식이다. 지난해 자동차 부품업체 SJM과 만도에서 이 같은 충돌이 있었다. 또 쌍용차 현대차 KEC MBC 등 노사갈등을 겪은 사업장은 대부분 사측이 수십~수백억원 대의 손배소를 제기한 상태다.
하지만 경영계라고 해서 할 말이 없지는 않다. 노조가 법 테두리 밖에서 문제를 풀려고 하는 바람에 대립적인 노사관계가 되풀이된다는 것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남용우 노사대책본부장은 "노조가 단체교섭 범위를 벗어난 요구를 하고는 이게 관철되지 않으면 법을 벗어난 노동운동을 한다"며 "이 과정에서 발생한 일에 대한 민ㆍ형사 책임을 물으면 이를 피하려 또 다시 투쟁을 한다"고 지적했다.
정말로 경영이 어려운데도 노조가 구조조정 계획에 대해 협상하려 하지 않으면 회사의 운명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갈 수 있다. 김동원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사측도 생산량, 매출 등 정보를 투명하게 공유하지 않은 측면이 있지만, 몇몇의 경우 실제로 경쟁력을 잃어 구조조정이 불가피한데 노조가 과도하게 떼를 쓰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노조가 있는 기업은 노사간 신뢰도가 오히려 낮은 것으로 조사된다. 고용노동부가 2010년 실시한 연구용역 조사에서 노사 각각이 서로에 대한 신뢰지수를 조사한 결과 노조가 있는 기업이 모두 지수가 낮았다. 노조가 있는 기업에서 오히려 노사 관계를 대립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강하다는 것이다.
정부가 노사간 균형점 찾아줘야
압축성장을 거친 우리 사회는 노사협력의 역사도 25년 정도에 불과하고 사회적 안전망도 미흡해 노사간 갈등이 더 격렬하다. 사측은 노조를 경영의 위협요소로 간주해 뿌리뽑으려 하고, 노조 역시 결사투쟁밖에 길이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크다. 이 같은 불신과 대립은 쌍용차 해고자와 가족들의 죽음, 희망버스 집회, 최근 잇따른 노동자 자살과 고공농성 등 사회적으로 엄청난 비용을 초래했다.
전문가들은 노사가 서로를 경영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갈등을 조정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사측이 과도하게 법의 힘을 이용해 노조를 압박하는 것은 일시적으로 갈등을 억누르는 것을 뿐 더 큰 갈등을 초래해 사측도 잃는 게 더 많아진다"며 "사측이 노조를 먼저 생산ㆍ경영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자율적인 이해관계 조정시스템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지금 노사가 서로를 파트너로 인정하기에는 힘의 비대칭이 너무 심하다는 점이다.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노사정 대타협을 이야기하지만 지금은 노조의 힘이 너무 약해 사측은 굳이 대타협에 참여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지적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의 역할이다. 조 연구위원은 "행정해석과 집행 등에서 사용자 편향적 입장을 취해온 정부가 노조의 활동이 침해되지 않도록 법 제도 등을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노조가 조합원뿐 아니라 비정규직 근로자 등 많은 근로자들을 대변하는 방식으로 힘을 키워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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