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식으로 공개된 적이 없는 손보기(1922~2010) 전 연세대 박물관장의 소장본 삼국유사가 연세대에 기증되면서 처음으로 나왔다. 이는 조선 초기 판본으로 다른 판본에서 글자가 탈락하거나 잘못된 곳이 많았던 왕력편(王曆篇ㆍ역대 왕조별 왕의 족보)이 포함돼 있어 사료적 가치가 높다.
연세대는 고고학자 겸 서지학자로 이 대학 사학과에 오래 봉직했고 대학박물관장을 지낸 손 교수가 소장했던 삼국유사 1책 목판인쇄본을 유족에게서 최근 기증받았다고 15일 밝혔다.
이번에 기증받은 1책은 신라ㆍ고구려ㆍ백제ㆍ가야의 역대 왕의 족보를 간략하게 기술한 '왕력편'과 삼국시대 각종 기이한 이야기를 모은 '기이편(奇異篇)' 권1과 권2로 구성돼 있다. 연세대는 "손보기 교수 기증본을 검토한 결과, 삼국유사 1책이 낙장없이 완벽하게 보존돼 있으며, 조선 초기에 간행된 것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연세대는 "손보기 기증본을 다른 삼국유사의 초기 간행본 권2(보물 제419-2호ㆍ성암고서박물관 소장)와 대조한 결과 동일 판본임을 확인했다"며 "같이 1책으로 묶인 왕력편과 권1도 판면 상태로 봐도 동일 판본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삼국유사가 조선초기에도 간행된 것은 이 시기 고판본의 인본(印本)인 석남본(石南本)과 송은본(松隱本)이 현존하기 때문이다. 보물 제419호로 지정된 송은본은 현재 곽영대(郭永大)가 소장하고 있다.
고려 말인 1281년(충렬왕 7년)경에 일연 스님이 펴낸 삼국유사는 1512년(조선 중종 7년) 경주에서 발행한 목판본인 '중종 임신본(中宗 壬申本)' 혹은 '정덕본(正德本)이 완전한 형태로 전하는 가장 오래된 판본이다. 이르면 고려말, 늦어도 조선 초기 찍었을 판본이 최근 발견되고 있지만 이것도 전질이 아니라 일부만 남아 있었다.
특히 삼국유사를 구성하는 여러 편 가운데 '왕력편'만 글자 탈락이나 오류가 심한 데다, '중종 임신본' 이전의 판본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번 손보기 소장본은 가치가 높다는 평가다.
예컨대 '중종 임신본'에서는 신라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어머니 천명부인(天明夫人)이 죽은 뒤 받은 이름인 시호가 '문정(文貞)'이라고 했지만 이번 손보기 소장본에서는 '문진(文眞)'으로 기록됐다.
신라 진덕여왕 아버지가 '국기안(國其安)'으로 알려졌지만 이번 자료에서는 '국진안(國眞安)'으로 표기됐다. 또 진덕여왕 어머니 아니부인(阿尼夫人)은 아버지가 기존 자료에는 이름이 '노(奴)'이며 사후에 '○○갈문왕(葛文王)으로 추봉됐다'고 했지만 이번 자료에서는 기존에 탈락한 갈문왕 이름이 '만천(滿天)'으로 밝혀졌다.
신승운 성균관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귀중한 왕력편 판본을 손보기 선생이 소장하고 계셨다는 사실은 이 분야 전문가들은 다 알고 있었지만, 이를 생전에 공개하지 않아 그 전모를 알 수 없었다"며 "이번에 공개한 자료는 중종 임신본 이전에 나온 유일한 왕력편이라 그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고 말했다.
서영대 인하대 사학과 교수는 "왕력편은 왕들의 족보라는 점에서 한 글자 한 글자가 중요한데 조선 초기 판본 공개로 한국고대사의 의문이 상당수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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