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워서 하는 게 8할, 의무감이 2할이죠." 피아니스트 강은하(42)씨가 말하는 현대음악을 하는 이유다. 셈여림 등을 일일이 지시하지 않고 연주자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부여하는 현대음악이 그는 즐겁다. 시간을 강박적으로 엄격히 지시한 곡을 연주하다 초를 놓쳐 감(感)으로 하거나 좌우로 길게 펼쳐진 악보 때문에 당황한 적도 있지만 그 역시 즐겁다.
피아노, 멜로디혼, 자그마한 토이피아노 등 어쿠스틱 피아노 계열의 악기를 무대에 등장시켜 현대성을 전파해 온 그가 현대음악 트리오를 만들었다. "잘 연주되지 않는 곡들이 저희의 콘서트 목록이죠." 플루트(배종선), 클라리넷(안종현)과 함께 하는 독특한 편성이라 곡 정하는 것부터 만만찮다. 4월 29일 창전아트홀에서 창단연주회를 갖는 이 팀은 이름에 트리오를 붙이지 않았다. 작품에 따라 드나듦이 자유로운 편성 때문이다.
스위스 취리히 음대에서 유학한 5년 간의 문화 충격으로 그는 다시 태어났다. "현대음악이 당연히, 적극적으로 수용된다는 점이 가장 인상적이었죠."
1999년 귀국 독주회의 기억은 아직 생생하다. 독일 작곡가 볼프강 림의 '피아노 소품 3번'을 한국 초연했을 때, 평가를 해 줄 교수를 찾지 못했다. 그 뒤 나름의 답에 도달했다. "현대음악이라도 청중이 쉽게 들을 수 있는 레퍼토리를 연주하는 콘서트를 하기로 마음 먹었죠. 연습하다 보면 (그런 곡은) 느낌이 와요."
2002년 21세기악회의 제 1회 국제작곡콩쿠르에서 이스라엘 작곡가의 '플루트, 더블베이스, 피아노를 위한 3중주'로 대상과 연주자상을 받은 데 이어 작곡가 박창수씨와 작업했고, 피아노 듀오 앙상블 클라모레를 만들었다. 2008년부터는 국제전자음악페스티벌에 참여해 비디오나 전자음악과 협연하고 있다."1년에 8~10회는 현대음악이 주인공인 콘서트에 참여하죠."
피아노를 뜯어 고치다시피 하는 작품을 연주해야 할 때면 연주홀과 실랑이를 벌여야 한다. 그래서 빌린 피아노로 강행한 적도 있다. 다음 독주회에서는 노노, 볼프강 림 등 거장들의 한국 초연곡을 선보이거나 외국의 젊은 작곡가의 신작을 받아서 연주할 예정이다.
그는 현대음악의 무한한 지평이 좋다. 2010년 생황과 협연 이후 아직은 막연한 가능성의 영역이지만 국악적 어법이 또 어떤 즐거움을 안겨다 줄지 그 자신도 모른다.
장병욱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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