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가 창궐해 지금껏 추수도 하지 못했다. 마을 주민이 모두 병에 걸려 시신을 처리할 사람조차 없다. 경성에서 독감으로 사망한 사람이 268명이다. 서산에만 8만여 명의 독감 환자가 있다.' 스페인독감이 전 세계를 휩쓸었던 1918년 11월 매일신보에는 국내에서의 참상이 상세하게 기록돼있다. 그 해 조선의 총인구 1,670만 명 중 44%인 742만 명의 환자가 발생해 14만 명이 사망했다고 총독부는 집계했다.
■ 역사상 가장 지독했던 독감으로 기록된 스페인독감은 1918년부터 불과 2년 새 3,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1차 세계대전 막바지 유럽의 병영에서 발생해 전후 참전군인들이 귀환하면서 급속도로 퍼졌다. 이런 엄청난 피해에도 바이러스 분리 보존 기술이 없어 정확한 원인을 모르고 있다 2005년에야 찾아냈다. 미국의 한 연구팀이 알래스카에 묻혀있던 스페인독감 희생자인 여성의 폐 조직에서 바이러스를 재생해냈다. 2000년대 초부터 퍼진 조류독감과 거의 일치했으며 그 후 나타난 신종플루와도 유사했다.
■ A(고병원성) B(약병원성) C(비병원성)으로 분류되는 독감 바이러스 가운데 유행을 일으키는 주범은 A형이다. A형 바이러스는 항원 H(16종)와 N(9종)의 조합에 따라 이론적으로 144종의 형태로 변종이 가능하다. 이 중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바이러스는 H1N1(스페인독감), H5N1(조류독감), H2N2(아시안독감), H3N2(홍콩독감) 등이다. 아시안독감은 1957년 유행해 100만 명, 1968년 퍼진 홍콩독감은 70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 미국과 중국에서 독감이 급속하게 번져 비상이 걸렸다. 우리나라도 곧 주의보가 내려질 가능성이 높다. 미국에서 퍼지는 바이러스는 H3N2이고, 국내에서 유행하는 바이러스는 H1N1으로 유형이 다르다. 신종플루인 H1N1은 2009년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지만 지금은 일반 인플루엔자로 분류될 정도로 통제가 가능하다. 손 자주 씻기 등 간단한 위생수칙만으로도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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