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출근길 시속 120㎞ 버스 타고 '조마조마'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출근길 시속 120㎞ 버스 타고 '조마조마'

입력
2013.01.15 12:14
0 0

'오늘도 안전운행.'

행정안전부 정부청사관리소 박일범 기획관은 매일 새벽 기도하는 심정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지난달 이뤄진 6개 중앙부처 이전 후 수도권 15개 지역에서 2,000여명의 공무원을 싣고 매일 새벽ㆍ저녁 세종시를 오가는 47대의 임대 관광버스 때문이다. 세종시까지의 300리 거리(110㎞ㆍ경기 성남시 분당 기준)를 1시간30분에 주파하려고, 45개 좌석에 공무원을 가득 태운 채 고속도로에서 시속 120㎞를 불사하는 이들 버스에 대한 민원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박 기획관의 기도 덕분일까. 15일 아침 8시10분, 40여명 승객이 내뿜은 입김으로 창문에 온통 습기가 맺힌 임대 버스에서 무사히 내린 모 경제부처 A과장. 왕복 5차선 중 3차선은 주차장이 됐고, 나머지 차선에는 15톤 덤프트럭이 휙휙 오가는 청사 앞 도로를 재빨리 건넌다. 교차로에 신호등이 있지만, 의미 없는 빨간색 점멸 신호만 내보낸다. 대리석 바닥이 깔린 청사 출입문 바로 앞까지 불법 주차한 승용차를 볼 때마다 '무법천지'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비슷한 시각, 다른 부처의 B과장. 새집 증후군 탓에 머리가 아프지만,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자료 준비로 정신 없이 바쁘다. 이때 서울에 머물던 차관이 "오후에 관련 내용을 보고하라"고 지시한다. KTX 열차를 타러 충북 오송역까지 서둘러 출발한다. 청사~오송역 30분, 오송역~서울역 50분, 서울역~시내 10분 등 가까스로 시간을 맞춰 보고를 마쳤더니 오후 2시다. '서울에서 오후 2시 이전에 업무가 끝나면 세종시 복귀가 원칙'이라는 지침 때문에, 다시 세종행 KTX에 몸을 싣는다. '지난주(7~11일) 국무총리는 근무일(5일) 중 3일을, 국토해양부 장관은 5일 내내,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5일 중 4일을 서울에서 머물렀고, 이에 따라 국ㆍ과장급 간부가 단순 보고용 출장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언론 지적이 실감났다.

이날 저녁 또 다른 부처의 C과장. 인수위 요구자료 작성을 위해 과천청사에서 그랬던 것처럼 야근을 시도했지만, 이내 포기하고 만다. 오후 6시가 넘어가자 서울에서 출퇴근하는 사무관 2명의 얼굴색이 변했기 때문이다. "저녁 7시에 서울로 떠나는 막차를 놓치면 귀가할 방법이 없다"는 하소연에 예전 같으면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룬다.

부하 직원을 내보낸 C과장은 세종시 장군면의 월세 50만원짜리 하숙집으로 출발한다. 청사 앞 도로에 주차한 승용차에 시동을 걸었더니, 주유등에 불이 들어온다. 청사 반경 5㎞주변에는 주유소가 없다. 어쩔 수 없이 목적지 정반대 방향이지만, 가장 가까운 조치원시 부근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었다. C과장은 "청사 인근에 마땅한 식당은 물론, 극장이나 PC방 등 문화시설도 없다"며 "오늘따라 중학생 딸의 학교 문제로 서울에 남겨 둔 가족이 더욱 그립다"고 말했다.

공무원노조 관계자는 "근무 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채 서둘러 부처 이전이 이뤄지는 바람에 행정 비효율성이 상상을 초월하고 있고, 행정부처를 찾는 민원인들의 불편과 불만도 가중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