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었다. 멀리 나무가 보였다. 멀리 있으니 손가락만큼 작았는데 잎사귀의 잎맥까지도 다 들여다보였다. 저렇게 작은데 왜 손바닥의 손금처럼 환하지? 나와 나무 사이의 거리는 어디 간 거지? 나는 어쩔 줄 모르며 혼자 묻고 묻다가 눈을 떴다. 눈을 뜬 채로 꿈속의 나무를 생각했다.
나무는 아득히 멀었지만 나와 나무 사이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공기도, 시간도, 거리도. 차라리 '없음'만이 있었다고나 할까. 불현듯 'immediately'라는 영어단어가 떠올랐다.'직접적으로'라는 뜻을 지닌 이 단어를 처음 접한 건 중학교 때였다. 무작정 외워 쓰기에는 너무 길고 복잡하여 쪽지시험에서 항상 틀렸던 기억이 난다.
이 단어의 형태소를 구분할 수 있었던 건 한참 머리가 큰 후였다. 매개나 간섭을 뜻하는'mediate'에 부정의 뜻을 지닌 접두사 'im~'과 부사형 접미사 '~ly'가 붙는다. 직역한다면 '직접적으로'보다는 '비매개적으로'에 가깝다. 알고 나니 시원했다기보다는 기묘한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에 아무것도 없다는 뜻을 지닌 단어가, 중간에 뭔가 있다는 뜻을 중간에 품고 있는 것이다.
직접적이기 위해 간접화되고 비매개적이기 위해 매개를 필요로 한다. 아득히 멀면서도 너무도 환하고 선명했던 내 꿈속의 나무처럼. '없음'만이 나와 나무 사이에 가득하던 풍경처럼. 혹시 이 꿈을 꾸기 위해, 나는 immediately라는 단어를 익혔던 게 아닐까.
신해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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