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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로 잃은 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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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로 잃은 민주당

입력
2013.01.14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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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부 기자들 사이에서 정치권을 비판할 때 야당은 가급적 너그럽게 다룬다는 일종의 불문율이 있다. 여당보다 야당에게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경우 '어용'(御用)이란 눈총을 받던 권위주의 정권 시절부터 내려온 관행이기도 하고, 강자에 대한 견제가 양심이라는 우리 사회의 정서와도 맥이 닿아 있어서 그렇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지금의 민주통합당에 대해서는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당사자들이 서운해도 할 수 없다. 문재인 후보를 찍은 48%의 지지자들이 민주당의 현재 모습에 느끼는 분노나 상실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테니까.

대선 이후 새누리당은 정책 공약집을 내고 인수위를 만들며 차기 정부 윤곽을 그려 나가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친박 공신들도 정치 일선과 거리를 두면서 박근혜 당선인의 활보를 측면 지원하고 있다. 차근차근 나아가는 새누리당에 비해 민주당은 어떤가.

대선이 끝난 지 한 달이 돼가는 데도 아직 대선 패배를 평가할 외부 위원조차 선임하지 못했다. 비대위를 만들긴 했지만 비대위원장은 범친노로 분류되는 관리형 인사고, 비대위원들은 계파별 안배만 염두에 둔 나눠먹기 인선이었다.

주류인 친노 진영은 비대위 구성 과정에서 대선 패배의 모든 책임을 떠안게 되지 않을까 하는 점을 우려했고, 비주류도 각자 이해관계 때문에 한 목소리를 담아내지 못해 비롯된 결과다.

이 때문에 당의 혁신은 고사하고 공정한 대선 평가마저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는 평가다. 이에 문희상 비대위원장은 14일 국립현충원과 4ㆍ19 민주묘지를 찾아 사죄의 참배를 했고 15일부터는 광주와 부산, 경남 김해 등을 돌며 대선 패배를 반성하는 '회초리 투어'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초등학생도 반성문을 쓸 때에는 자신이 뭘 잘못했고, 다시는 그런 행위를 되풀이 않겠다고 적는다. 그런데 민주당 지도부는 분명한 잘잘못도 가리지 않고, 책임 진다는 이도 없는 상태에서 그저 국민 앞에 반성한다고만 외치고 있다.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정확한 평가가 없으니 통렬한 반성도 없고 처절한 자기 비판도 없다. 그저 책임을 모면하려는 이들뿐이다. 벌써부터 친노 진영에서는 '대선 패배가 모두의 책임이지 특정 세력만의 잘못이라고 규정할 수 있느냐'라는 강변이 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책임 소재를 정확히 가리는 건 중요하다. 하지만 최소한의 정치적 도의란 게 있다.

1992년 대선의 패자인 DJ는 정계 은퇴 선언 뒤 영국으로 갔다. 97년 이회창 후보는 한나라당 명예총재에 머물면서 당무를 멀리 했고, 2007년 정동영 전 의원도 한동안 낮은 자세로 임했다. 이들을 정점으로 한 당내 '왕당파'들도 함께 고개를 숙였다.

2011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패한 한나라당도 각종 악재가 돌출하자 박근혜 비대위원장을 앞세워 당 지도부를 교체하고 당명과 당 고유 색깔을 바꾸는 등 모든 것을 일신하려 애썼다. 그간 주도권을 쥐고 있던 친이계는 말없이 뒤로 물러났다. 그 결과 국민은 새로운 여당 세력에게 표를 던졌다.

두 번의 선거를 주도했다가 쓴 잔을 마신 민주당 주류는 지금 어떤 상황인가. 백의종군은커녕 잠시 비켜서 있는 것도 기대하기 어려운 듯 하다.

문재인 전 후보는 요즘 정치 기지개를 켜고 있고 주류 측도 서서히 차기 전당대회를 겨냥하며 당권 재장악에 나설 태세다. 그러면서 겉으로는 "대선 패배 수습이 원만히 잘 해결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계파 이익에 가려 대의는 간 곳이 없다.

여기엔 비주류의 책임도 작지 않다. 그들은 주류를 대신해 당 개혁과 쇄신을 주장해야 할 당위성이 있는 데도 자기 보신에만 급급하면서 총의를 모으지 못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민주당이 방향성을 잃고 표류하는 이유다. 민주당 주류와 비주류가 보편적 가치와 상식을 회복하지 않는 한 그들의 주장에서 대중적 설득력을 찾긴 어렵다. 지금의 민주당에는 대선 패배만 있지 반성도, 쇄신도 없다.

염영남 정치부 차장 liber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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