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매뉴얼을 말하는 건가."
13일 오전 염산 누출 사고가 난 상주 웅진폴리실리콘 공장의 담당자는 "왜 즉각 신고하지 않았느냐. 비상대응 매뉴얼을 지킨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반문했다. "밸브가 완전히 터진 후에도 신고하지 않았는데 매뉴얼이 있긴 한 거냐"고 재차 묻자 그는 "자체적으로 막아 보려다 그런 것"이라며 말을 돌렸다. 12일 오전 7시30분 염산누출사고 발생 후 3시간이 지나 공장도 아닌 주민의 신고로 당국에 알려진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기자는 수차례 공장담당자에게 비상대응 매뉴얼의 존재 여부를 물었지만 답을 얻지 못했다.
같은 날 관할지역의 유독물질 관리를 담당하는 상주시 재난관리과 관계자는 "그런 매뉴얼은 없다"고 답했다. 방제작업을 진행한 소방서 측 역시 "우리는 화재 등의 재난 대응 매뉴얼만 있을 뿐 유독물질 누출사고 관련 매뉴얼은 없다"고 말했다.
대구경북지역의 유독물질 관리상황을 감시하는 대구환경청은 "화학유해물질 유출사고 위기대응 실무매뉴얼이 있긴 하지만 지방자치단체나 업체에 강제할 방법은 없다"고 밝혔다. 유독물질은 외부 누출 사고 시 대량 인명피해와 함께 대규모 환경재해를 가할 엄청난 위험을 안고 있지만 유독물질 취급업체나 관계기관의 비상사태 대비 실상은 이렇게 참담했다. 이러니 사고 소식을 접하고도 인근 주민 640여명에게 대피령을 내리지 않은 당국의 대담함도 이해할 만했다. 근로자 5명이 숨졌고 주민 1만여 명이 치료를 받았던 구미 불산누출 사고가 일어난 지 불과 4개월이 되지 않았지만 업체와 당국의 무모한 안일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1991년 3월 영남 전역을 공포에 몰아넣은 구미 페놀 누출사고, 2008년 김천 코오롱유화공장 폭발에 따른 페놀 누출사고 등 낙동강 벨트 산업단지에서 유사한 유독물질 누출사고가 잊을 만하면 생기지만 업체와 당국의 허술한 대비태세는 변한 게 없다. 도대체 얼마나 큰 사고가 터져야 당국이나 유독물질 취급업체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총체적 사고대응 시스템을 갖출 것인가.
사회부 조원일기자 callme1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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