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미래창조과학부를 신설하고 연구개발(R&D) 예산을 확대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한 젊은 과학도가 "이공계 위기의 본질은 비정규직"이라고 현장의 목소리를 전했다. 연구직은 비정규직 보호법이 적용되지 않는 예외대상이어서,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연구기관의 비정규직 비율이 절반을 넘어섰다. 이 과정에서 과학기술자들의 도전의식도 잠식되고 있다.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박사과정에 있는 배현진씨는 '교육정책포럼'(한국교육개발원 발간) 12월호에 게재한 '이공계 재학생이 본 이공계 위기와 해법'이라는 기고문에서 "고학력 비정규직 연구원ㆍ기술자의 규모가 커지고, 비정규직 인력들은 소모품처럼 계속 바뀌며 불안정한 신분으로 오랜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과학기술 인력에 대해 일반 대중이 생각하는 대부분의 부정적인 이미지는 이런 과정에서 생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는 "2010년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 대비 과학기술 투자는 3.37%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 중 4위"라며 "(돈 문제는) 이공계 위기의 본질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교과부에 따르면 교과부 산하 10개 연구원이 직접 고용한 비정규직 연구자가 38%이고, 정진후 진보정의당 의원실이 학생이나 파견(청소ㆍ경비 등) 비정규직까지 합쳐 분석한 결과 비정규직 비율이 52%에 달한다. 국내 전체 비정규직 비율 33.3%, 중앙정부 산하 공공부문 비정규직 비율 29.4%와 비교하면 연구원의 비정규직 비율이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다. 중앙정부 산하 기관의 직접고용 비정규직은 15.5%다.
현행 비정규직법은 2년 이상 상시업무에 종사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돼 있지만 '사업의 완료 또는 특정한 업무의 완성에 필요한 기간을 정한 경우'에는 예외로 하고 있다. '연구 프로젝트의 완성기간'이라는 미명하에 수많은 연구자들이 비정규직을 전전한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단기 성과에만 매몰될 수밖에 없다는 문제점도 지적됐다. 배씨는 "단기적 성과에만 열중하는 분위기 속에서는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연구ㆍ개발은 심각하게 제한될 수밖에 없다"며 "학문 분야에 따라 단기 성과를 내기 어려운 연구ㆍ개발을 수행하는 이들은 도태되기 쉽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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