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7월 삼성전자는 900ℓ 냉장고를 내놓으면서 '세계 최대용량'을 강조했다. 한 달 뒤 LG전자는 910ℓ 냉장고를 출시했다. '세계 최대' 타이틀을 뺏긴 삼성전자는 8월 인터넷에 '냉장고 용량의 불편한 진실'이라는 동영상을 올린다. 두 회사 냉장고를 눕혀놓고 물을 부어보니 삼성 냉장고가 더 많이 들어가더라는 내용이었다. 발끈한 LG전자는 광고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서울중앙지법은 LG전자의 손을 들어줬다. 삼성은 나흘 뒤 결국 동영상을 삭제했다.
하지만 끝난 게 아니었다. LG전자는 ▦삼성전자 허위광고로 인해 브랜드가치가 최소 1% 이상 훼손됐고 ▦반박광고비로 5억여원이 소요됐다는 점을 들어, 서울남부지법에 삼성전자를 상대로 100억 원대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1월11일)했다고 14일 밝혔다. LG전자 관계자는 "삼성전자 광고가 유튜브에 3개월 간 게재돼 조회수 267만 건을 기록했다"며 "이 영향으로 전략제품이었던 910ℓ 냉장고 판매에 차질이 컸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도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분위기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동영상 내용이 사실임에도 대응을 자제해 왔지만 LG가 소송을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만큼 모든 법적인 수단을 통해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 전자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삼성과 LG의 싸움이 격해지고 있다. 원래부터 라이벌 의식이 강했고 그만큼 신경전도 잦았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그 정도로 끝났다. 하지만 작년부터 양사의 싸움은 점점 격렬해져 이젠 법정대결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갈등이 가장 첨예한 곳은 디스플레이. 발단은 작년 4월 삼성디스플레이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 관련 핵심기술을 빼돌린 혐의로 LG디스플레이를 경찰에 고발하면서다. 이후 두 회사는 진실공방을 벌이다 결국 법정으로 갔다. 작년 9월 삼성디스플레이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OLED 기술유출 관련 기록 21종과 세부 기술 18종 사용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출한 것을 시작으로 두 회사는 총 5번의 소송을 주고 받았다.
이후 소송대상이 OLED에서 LCD기술로 확대되더니, 급기야 작년 말 LG디스플레이가 삼성전자의 '갤럭시 노트10.1'의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업계 관계자는 "완제품에 대한 판매금지신청은 특허공방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대응이다. 사실상 전면전을 벌인다는 의미"라며 "이번 냉장고 손해배상소송 역시 예상치 못한 초강수로 보인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두 회사는 지난해 3D TV광고와 관련해 영국 호주 미국 등 글로벌 시장에서 5차례나 분쟁이 있었다.
업계에선 양사 갈등의 가장 큰 이유를 치열한 경쟁구도 때문으로 보고 있다. 삼성과 LG는 TV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제품은 물론 디스플레이 같은 부품까지 제품군이 겹치는데다, 모두 세계 1~2위를 다투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시장경쟁은 격렬해질 수 밖에 없고, 브레이크 없는 무한경쟁이 이어지면서 결국 법정공방으로까지 비화되고 있는 것이다. 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점유율 경쟁이 큰 게 가장 큰 원인이다. 격차가 큰 스마트폰에선 양사간에 별다른 분쟁이 없지 않나"고 말했다.
현재 양사는 시장대결이 법정대결로 빈번하게 비화되면서, 감정의 골까지 깊게 패인 상태. 크고 작은 마찰이 생기면 제2, 제3의 법정공방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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