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에게 한 신도가 질문을 던졌다. "외국인들과 유창하게 대화를 하시는 것 같은데 몇 개 국어를 하십니까?" 추기경이 답했다. "2개 국어를 할 줄 압니다. 바로 참말과 거짓말입니다." 사람의 기능을 물어보는 질문에 추기경은 사람이 가져야 할 지혜로 대답한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를 보여주는 일화다.
사람이 세상을 보는 관점을 심리학에서는 '프레임'이라 부른다. 어떤 프레임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세상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어쩔 수 없이 일하는 환경미화원과 '지구의 한 모퉁이를 청소하고 있다'며 자부심을 갖는 환경미화원 중에서 누가 더 행복할 지는 자명하다.
각박한 세상살이와 날로 가벼워져만 가는 우리 사회에서 긍정적인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 보는 것은 분명 만만치 않은 일이지만 보다 행복한 삶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의미 중심의 프레임을 갖는 게 중요하다. 이 같은 관점에서 우리 앞에 산재한 사회 문제 해결에 흔히 하는 것처럼 당장 먹고 사는 일이 급하니까, 상황이 좋아지면 그때 가서 고려해 보자는 식의 대응은 합당한 답이 될 수 없다.
장애인 고용 문제가 그렇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다"란 말처럼 지금 장애인을 함께 껴안지 않는 사회가 경제상황이 호전된 나중에 가서는 장애인을 껴안을 수 있는 사회가 되기는 어렵다. 우리 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나아지고는 있지만 장애인 일자리 문제만은 여전히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장애인 구직자가 스스로 구인업체를 찾아 선택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울뿐더러 기업들도 산재 발생 우려와 생산성 저하, 동료 직원과의 인화 문제 등을 이유로 장애인 고용을 기피한다.
그러나 장애인 고용을 바라보는 '프레임'을 바꾸면 오히려 기업들에게 더 득이 되는 '착한 기업' 전략임을 알 수 있다. 아직까지 많은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이 기업의 홍보와 이미지, 또는 사회공헌활동 자체를 위해 사회복지시설을 이용하거나 어려운 형편의 이웃을 활용하는 데 머무르고 있는 반면, 장애인 고용의 경우 단순히 '돕는다'는 수준을 넘어 대상자들을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존중하고, 평등한 입장에서 '나눈다'는 철학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장애인 고용은 노력에 따른 성과를 관리하기도 쉽다. 아직까지 사회공헌에 익숙지 않은 기업들은 자신들의 노력이 실제 사회적으로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효과를 확인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반면, 장애인 고용은 기업이 가장 잘 아는 자신의 사업장이나 업(業)의 특성을 살려 할 수 있으므로 기업의 활동을 지역사회와 연계해 사회적, 경제적 가치의 총량을 확대하는 이른바 '공유가치창출(CSVㆍCreating Shared Value)'에도 도움이 된다.
일례로, 필자가 있는 회사는 발달장애인 고용을 목적으로 설립된 명함 및 소형 책자 인쇄 전문업체 베어베터와 협력해 발달장애인이 직업을 통해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전문교육 및 기술지원과 함께 발달장애인의 직업영역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업종의 특성을 고려해 기업에도 이익이 되고 사회가 직면한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되는 공유가치를 창출함으로써 기업 활동의 지속가능성과 정당성을 확보한 사례라 할 수 있다.
현대 마케팅 이론의 대가인 필립 코틀러는 미래에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착한 기업'만이 살아남는다고 강조한 바 있다. 기업의 사회적 역할은 이제 윤리적 차원을 넘어 생존의 문제가 되어버렸으며 사회공헌활동을 하냐 마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를 생각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물론 기업마다 사정은 다르고 그 방법도 기업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사회공헌의 어려움과 그 효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기업이라면 장애인과 일자리를 나누는 '착한 고용'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이면서도 효과적인 사회공헌 전략으로써 지역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고 이웃과 함께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중요한 선택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황인태 한국후지제록스㈜ 대표이사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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