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순간이 닥쳤을 때 어떻게 대처할지 떠올리는 훈련을 한 게 무사고의 비결인 것 같습니다."
14일 오전 10시43분 부산도시철도 1호선 범어사역. 승객들 사이로 중년의 기관사가 열차에서 내리자 여기저기서 박수가 쏟아졌다. 부산교통공사가 이날 개통 27년 만에 처음 배출한 '70만㎞ 무사고 운행' 기관사가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철도청 공무원을 거쳐 1985년 부산교통공사에 입사한 하영조(57ㆍ운전5급) 기관사는 1993년 20만㎞, 2000년 40만㎞m의 무사고 기록을 달성한 데 이어 이날 영광의 순간을 맞았다. 무려 지구를 17바퀴 반을 도는 동안 단 한번도 사고를 일으키지 않은 그의 기록은 향후 공사 내에서도 7년 동안은 깨질 수 없는 대기록이다.
하 기관사는 "열차가 승강장으로 들어설 때 미소 짓는 승객들의 얼굴을 보면서 기관사라는 직업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또 "오늘 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건 모두의 덕분"이라며 동료 기관사들에게 공을 돌렸다.
하 기관사는 운전대를 잡은 24년여 간, 단 한번도 결근을 하지 않았다. 또 동기들이 간부로 승진하며 보직을 옮기거나, 주변에서 사고 위험이 없는 내근직을 권유할 때에도 마음을 돌리지 않았다. 그는 "한번은 70대 할머니가 서울에 사는 딸이 보고 싶다며 열차 기관사실 문을 두드렸는데,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버스터미널과 가까운 역까지 모셔다 드린 적이 있다"며 "매일 다양한 시민을 만나는 게 삶의 활력소"라고 말했다. 그는 또"정년 퇴임까지 3년이 남았지만, 현장을 떠나지 않을 것"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70만㎞ 무사고 운행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2002년 9월 흉기로 무장한 강도가 도주하던 중 부산도시철도 1호선 온천장역 매표소를 통해 하씨가 운행 중이던 열차에 올라탄 적이 있었다. 당시 그는 침착함을 잃지 않고 승객들을 안전하게 대피시킨 뒤 출동한 경찰을 도와 위기를 넘겼다. 앞서 98년 6월엔 1호선 서면역 승강장에서 만취 승객이 갑자기 선로로 추락한 일이 있었지만 가까스로 30㎝ 앞에 정차하는데 성공, 추락 승객을 구조한 적도 있었다.
이번 기록 달성이 하 기관사에게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 지난해 부산 지하철에 사고가 잇따라 시민의 질타가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 기관사는 "연이은 대형 사고로 기관사를 포함해 조직 전체가 실의에 빠져있는데 이번 기록 달성으로 활력을 불어 넣는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부산교통공사는 하 기관사에게 감사의 의미로 상금 100만원과 여행 상품권을 지급했고, 1계급 특진을 검토 중이다.
부산=강성명기자 sm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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