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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과 얼굴

입력
2013.01.14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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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팀원인 후배에게 일을 하나 부탁했다.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는데, 다음날 메일이 왔다. 빙판길에서 넘어져 갈비뼈에 금이 간 터라 부탁받은 일을 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걱정 말고 어서 나으라는 답메일을 보냈지만 한숨이 나왔다. 사실은 후배의 건강보다, 일이 꼬였다는 생각이 앞섰다.

몇 명의 친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 이야기를 했다. 한 친구가 쓴웃음을 지었다. "나는 어땠는지 알아? 말 많고 탈 많은 동료 하나가 어느날 회식 자리에서 이러는 거야. 암이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그런데 그 얘길 하면서 고기도 먹고 술도 먹어. 겉으로는 어쨌든 걱정을 해주었지. 속으로는 말야, 이랬어. 드립이네. 이번엔 암드립이야. 뭘 또 내게 떠넘기려는 걸까."

우리는 우리의 치사한 마음이 불편했다. 머리로는 무엇이 우선이어야 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마음으로는 아픈 동료에 대한 근심보다 아픈 동료가 내게 지울 부담이 앞섰다. 간신히 머리의 명령을 따라 부담의 마음 위에 근심의 가면을 덮어썼을 뿐.

이 가면은 위선을 뜻하는 걸까.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알량한 위선이나마 이기적 본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지 않도록 얼마쯤 가려주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얼핏 들었다. 이 가면이 우리의 얼굴에, 우리의 마음에 들러붙어 아예 떨어지지 않기를. 시작은 가면이었으되 언젠가는 가면이 얼굴 자체가 되기를. 그날 친구와 나는 우리의 치사한 마음과 함께 이 소망을 눈빛으로 공유했다.

신해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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