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1월 16일, 유럽 오페라 춘희(椿姬ㆍ동백아가씨)가 국내 최초로 지금의 서울 명동예술극장인 시공관에서 공연됐다.
프랑스의 문호 알렉산더 뒤마의 소설 '동백아가씨'를 원작으로 이탈리아의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가 곡을 만들어 '라 트라비아타'로 이름 붙였고 이는 현재 세계인이 가장 사랑하는 오페라이자 친숙한 곡이 됐다.
1852년 파리를 방문한 베르디는 뒤마의 동명 소설이 희곡으로 완성돼 연극 무대에 오른 것을 보고 오페라로 만들 것을 결심한다. 청년 알프레도와 무희 비올레타의 사랑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베르디의 손을 통해 이듬해 3월 이탈리아 베니스의 라 페니체 극장에서 첫 선을 보였다.
순수한 사랑을 갈구하는 파리 사교계의 여왕 비올레타는 그녀의 살롱에서 순수한 귀족청년 알프레도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폐병을 앓고 있던 비올레타는 그 동안의 생활을 청산하고 알프레도와 동거를 시작하지만 생활고로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알프레도 또한 생계를 위해 파리로 떠난다. 사랑하는 남자의 앞날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로 결심한 그녀는 알프레도 곁을 떠나 예전 생활로 돌아가고 폐병이 악화돼 숨을 거두는 순간에야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이 작품에서 가장 유명한 곡은 1막 초반에 나오는 '축배의 노래'로 비올레타를 남몰래 흠모해 온 청년 알프레도가 파티에서 그녀를 처음 만나 함께 부르는 이중창이다. 밝고 경쾌한 리듬의 이 곡은 국가 경축행사나 TV음악회에 자주 등장하는 노래지만 실제 내용은 청춘의 피가 끓는 동안 삶의 쾌락을 즐기자는 것으로 약간 퇴폐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에서 초연된 춘희는 의사이자 테너 가수였던 이인선이 제작, 번역과 남자주인공 역할까지 소화한 1인 3역의 작품이었다. 훗날 한국 오페라의 대모라 불린 김자경이 소프라노 마금희와 함께 여주인공 비올레타 역을 맡아 한국 최초의 프리마돈나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김자경이 오페라에 눈을 뜨게 한 것도 춘희였고 68년 창단한 '김자경 오페라단'의 첫 작품과 그녀가 세상을 뜨기 전 마지막으로 공연한 작품도 춘희였다. 김자경은 훗날 자서전을 통해 "춘희가 이어준 인연으로, 오페라에 살고 오페라에 죽는 인생을 살았고 '오씨 성에 이름은 페라'인 오서방과 결혼했다"며 오페라와 춘희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다.
시공관에서 공연된 오페라 춘희는 5일 동안 전회 매진을 기록하며 많은 화제를 불러 모았지만 제작자가 상업적인 계산이 없어서 집과 피아노까지 처분해야 했다고 한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춘희'라는 명칭은 빗나간 여인이라는 뜻의 '라 트라비아타'를 일본인들이 동백 춘(椿)자를 넣어 번역한 것이고, 당시 우리가 이를 그대로 따르면서 생긴 이름이다.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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