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이 끝난 후 영화 '레미제라블'을 봤고, 내친 김에 칼 마르크스의 을 읽었다.
1789년 프랑스혁명은 절대왕정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했지만, 이후 군주정의 유령은 반복해서 나타났다. 1799년에는 나폴레옹이 집권했고, 그는 1804년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나폴레옹의 패배 이후 부르봉 왕정(1814~30년)이 부활했고, 1830년 7월 혁명에 의해 부르봉 왕조가 무너진 뒤에도 입헌군주제의 형태로 오를레앙 왕정(1830~48년)이 이어졌다. 1848년 2월 혁명에 의해 오를레앙 왕정이 무너지고 다시 공화정이 수립되지만, 보통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되었던 나폴레옹의 조카 루이 보나파르트는 영구집권을 노리고 1851년 12월 쿠데타를 일으켜 황제가 된다. 삼촌 나폴레옹에 이어 조카 나폴레옹의 제2제정이 이어진 것이다. 그의 집권은 1870년까지 이어졌다. 그러니까 1789년 대혁명에 의해 사라진 줄 알았던 군주정은 100여년 동안 틈만 나면 두더지처럼 땅밑에서 기어나왔고, 이처럼 혁명과 반혁명이 반복되었던 배후에는 공화정이냐, 군주정이냐 하는 표면적인 정치체제의 차이를 넘어서 첨예한 계급적 이해관계가 깔려 있었다.
마르크스는 1848년 2월 혁명의 과정을 가슴 졸이며 지켜봤다. 그는 프랑스에서 시작해서 유럽 전역을 휩쓸었던 혁명이 썰물 빠지듯 사라져가는 과정을 보면서 을 썼다. 이 책에서 그는 1848년 2월 혁명의 결과로 성립한 프랑스의 의회공화정이 어떻게 4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루이 보나파르트라는 "기괴하고도 평범한 인물의 독재체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분석했다. 부르조아가 주도하는 의회공화정의 생성과 사멸의 역사를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다룬 것이다.
이 책의 시작 부분은 아주 유명한데, 요약하자면 이렇다. "헤겔의 말대로 결정적인 세계사적 사건은 반복된다. 그리고 그것은 한 번은 비극으로, 또 한 번은 소극(笑劇)으로 끝난다." '브뤼메르 18일'은 삼촌 나폴레옹이 쿠데타를 일으켜 군사정권을 수립한 1799년 11월 18일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이라는 책 제목 속에는 1851년 조카 루이 보나파르트의 쿠데타는 1799년 삼촌이 일으킨 쿠데타의 모방이자 재판(再版)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것은 삼촌만 못한 조카가 벌이는 코미디라는 것이다.
이 책은 다양한 방식으로 읽을 수 있지만, 역사에서의 반복에 대한 이야기로도 읽을 수 있다. 이 책에서 마르크스는 "모든 죽은 세대의 전통은 악몽과도 같이 살아 있는 세대의 머리를 짓누르고 있다"고 말했다. 역사가 그대로 반복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역사 속에서 거듭 동일한 과오에 빠져들게 만드는 동일한 빈 '구멍'을 확인할 수는 있다. 가라타니 고진은 을 가리켜 대의민주제라는 근대국가 형태가 지니는 구조적 빈틈을 밝혀낸 탁월한 근대정치 비판서라고 했다. 신분대표제 의회에서와 달리 보통선거에 기초한 의회에서 '대표'는 그저 '의제(擬制)'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당과 정당이 구사하는 정치언어가 실제 계급관계와 따로 논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근대 국가의 오류가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빈틈이다.
그러나 당연히 대의민주제 안에서 선거는 중요하다. 이 점에서 지난 선거에서 정권교체에 실패한 것은 뼈아프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갈수록 엄중한 위기상황에서 국가권력이 더 이상의 파국적 행동을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더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명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서 국가권력에 의한 재분배를 통해서 경제민주화가 달성되기를 기대하기보다는 협동조합이나 지역화폐 운동 같은 자발적인 주민운동을 통해서 자립적 생활능력을 기르면서 민주주의를 위한 사회적 기틀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이 자발적인 방식은 목표에 이르는 과정까지도 즐거운 것이니 말이다.
박경미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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