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했던 대통령선거가 끝난 지 한 달이 가까워 온다. 신문 지면은 연일 박근혜 차기 정부의 인수위 소식으로 가득 차있다. 바야흐로 거대한 권력의 이동을 실감할 수 있는 정치의 계절이다. 그러나 한 가지 걱정스러운 일은 야당인 민주당의 앞날이다. 앞으로 민주당은 5년 후에 있을 대선에서 정권을 되찾을 수 있을까? 아니면 살아남을 수나 있을까? 건전한 야당이 존재하고 그 야당이 제대로 여당을 견제해야 국정이 원활하게 돌아갈 텐데 걱정이 앞서기만 한다.
민주당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가? 작년 4월 총선부터 복기해 보자. 필자 자신도 당시 여러 언론 매체로부터 총선 결과 예측 질문을 받고 민주당이 이길 것이라고 답했었다. 왜냐하면 이명박 정부 말기에 치러지는 총선은 정권심판론의 성격이 강했고, 야당이 민생문제나 '내곡동 사저 문제' 등 이명박 정부의 실정을 공격할 수 있는 소재는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한미FTA반대', '제주해군기지건설반대'와 같은 이념적 이슈를 제기하면서 민생과 같은 실용적 이슈로부터 멀어졌다. 게다가 민주당과 선거연대를 했던 통합진보당의 '종북' 색채마저 드러나기 시작했다. 결국 총선에서 많은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새누리당이 승리했다. 민주당은 구태의연한 이념 문제에 매달리다 총선에서 패배한 것이다.
민주당은 총선 결과를 교훈 삼아 이념적 차원에서 재빠르게 좀 더 우클릭하여 중도층의 유권자를 사로잡았어야 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결국 대선에서도 중도층의 유권자를 붙잡지 못하여 3.6%포인트 차이의 득표율로 새누리당에 패배했다. 만약 민주당이 2%의 중도층 유권자만 더 끌어 왔어도 새누리당을 박빙으로 이길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민주당은 2%의 득표율 벽을 넘지 못하고 선거에서 패했던 것이다.
민주당의 앞길은 더욱 험난하다.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얻은 48%의 득표율도 독자적으로 얻은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문 후보의 표에는 안철수 전예비후보를 지지한 유권자들의 표가 숨어 있다. 그 지지표들은 민주당의 문 후보가 좋았다기보다는 도저히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는 찍을 수 없다는 유권자들의 표심이 반영된 표였을 것이다. 민주당은 앞으로 이 유권자들의 표를 또 다른 안철수 없이 독자적으로 얻어야만 다음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 게다가 다음 대선에서는 민주당에게 불리한 보수적 노년층 유권자들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새누리당은 더 적극적으로 민생 이슈를 내걸고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을 파고들고 있다.
민주당은 이제 당내에서 이러한 엄혹한 상황을 냉정히 따져 보고 다음 대선 승리를 위해 치열한 노선투쟁과 가치논쟁을 벌여야만 한다. 민주당은 지난 대선의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철저한 가치논쟁을 거치지 못했다. 민주당은 앞으로 본격적인 가치논쟁을 통해 좀 더 중도적인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안보와 같은 초당적인 이슈에 대해서는 새누리당과 큰 차이가 없는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이념적 측면에서 조금이라도 종북적인 색채가 나는 정당과는 철저하게 결별해야 한다. 그리고 민생문제와 같은 이슈에 대해서는 새누리당보다 현실적이고 개혁적인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한국의 정당체계는 미국의 공화당, 민주당과 같은 양당체계와 유사해 질 것이다.
만약 민주당이 철저한 가치논쟁을 거치지 않고 미봉책으로 일관한다면 실망한 민주당 일부 세력들은 새누리당에 흡수될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 되면 새누리당은 과거 일본의 자민당과 같은 일당우위 체계의 정당이 될 것이고 민주당으로의 정권교체 가능성은 더 요원해 질 것이다. 이것은 결코 한국의 정치발전을 위해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과거 영국의 노동당은 1979년 마가렛 대처의 보수당에게 정권을 넘겨 준 뒤 뼈를 깎는 당 혁신을 통해 토니 블레어가 18년 만에 정권을 다시 찾는 데 성공했다. 민주당도 자기부정에 가까운 당의 혁신을 통해 10년 이상을 내다보는 새로운 노선을 제시해야만 정당으로서 생존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정권교체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철순 부산대 정치외교학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