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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해고회피 최선 다했나" 기준 만들고 실업급여 등 현실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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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해고회피 최선 다했나" 기준 만들고 실업급여 등 현실화해야

입력
2013.01.14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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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애(38)씨는 11일 1년 반만에 출근준비를 했다. 1994년 반도체 가공업체 시그네틱스에 입사한 윤씨는 두 번 해고를 당했다. 공장이전을 반대하는 파업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2001년 동료 102명과 함께 첫번째 해고를 당했다. 대법원의 복직 명령을 받아 2007년 6월 안산공장으로 복직한 후에는 하청업체로 전적(前籍)하라는 회사의 요구를 거부했다가 '경영상 이유'로 동료 27명과 함께 두번째 정리해고를 당했다. 윤씨 등 노조 조합원들은 "정규직 없는 공장을 만들기 위해 공장을 하청업체에 넘기고 부당하게 정리해고하려 한다"고 소송을 낸 끝에 공장에 돌아오게 됐다.

세 자녀를 둔 윤씨는 첫 번째 해고를 당했을 때 다른 업체에 취업해 생계를 유지했지만 두번째 해고 후에는 생활이 막막했다. 남편의 건강마저 나빠져 윤씨가 돈벌이에 나서야 했지만 일자리가 없어 월 90만원 안팎의 구직급여와 노조의 생활지원비(106만원)로 생활했다. "예상보다 일찍" 복직을 했지만, 4년 동안 부어오던 연금 납부를 중단한 것은 못내 가슴 아프다. 회사의 전적 요구에 타협했으면 이런 고초를 피할 수 있지 않았겠느냐는 질문에 윤씨는 "흑자를 내면서도 경영상 이유로 우리를 해고한 회사의 처사가 부당해 싸울 수밖에 없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조에 따르면 윤씨 등을 정리해고하기 전인 2010년과 2011년 상반기, 시그네틱스의 영업이익은 388억원에 달했다. 법원이 해고를 단행할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없다며 부당해고로 판단한 이유다.

고무줄 정리해고 요건 갈등 부추겨

1998년 신설된 근로기준법의 정리해고 조항(일명 정리해고법)은 정당한 정리해고의 요건으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 ▦해고회피 노력 ▦합리적이고 공정한 해고기준 마련 ▦해고 50일 전 근로자대표에 통보를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 '해고 회피노력' 조항에 대해 명확한 기준이 없는 점이 정리해고로 인한 갈등을 증폭시킨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리해고법이 도입되기 전만 해도 법원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를 정리해고를 하지 않으면 회사가 도산하는 수준으로 해석했으나 2000년대 이후에는 "장래에 올 수도 있는 미래의 위기에 대처"하는 정도로까지 완화해 해석하고 있다. 2003년 550억원의 당기순이익, 2004년 263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냈던 흥국생명의 경우 2005년 21명을 정리해고 했다. 법정다툼에서 사측은 "전년보다 흑자폭이 줄어 들었다"며 경영상 위기를 주장했는데 법원은 이를 수용, 정리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흥국생명의 해고자들이 "(실제로 위기였던) 쌍용차 해고자들도 억울한데, 흑자기업에서 해고당한 우리는 어떻겠냐"고 반문하는 이유다. 노동계는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에 구체적인 사유를 명시하도록 법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해고자에 대한 복지제도도 미비

법 제도의 결함도 문제이지만 부실한 사회안전망도 '옥쇄파업', '철탑농성'이라는 극한 투쟁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나라의 경우 실업급여의 수준이 평균 소득의 50%에 불과(상한선 100만원)하고 최장 8개월까지만 받을 수 있다. 덴마크(90%, 최장 2년), 프랑스(75%, 최장 3년), 미국(53%, 최장 30주) 등 선진국에 비하면 부족한 수준이다. 실업급여 기간이 끝난 뒤 생계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 '실업부조'의 경우 수십개 국에서 운영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이제 막 도입이 논의되는 단계다.

경력자에게 경직적인 고용문화를 정리해고 갈등의 원인으로 꼽는 전문가들도 있다. 김동원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은 신입사원 수준에서만 외부인을 받아들인다"며 "해고자를 고용하려 하지 않는 회사와 일하던 곳에서만 반드시 일하려는 노동자가 담합해 만든 문화탓"이라고 지적했다. 해고자, 경력자 고용에 적극적인 회사에 정부가 인센티브를 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정규직 과보호, 비정규직 과소보호

우리나라 정리해고의 문제를 대기업 정규직과 중소기업 비정규직간의 큰 임금격차,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 비정규직에 대한 과소보호를 꼽는 전문가들도 많다. 김기원 한국방송통신대 경제학과교수는 이를 '정리해고의 이중구조'라고 말한다. 김 교수는 "대기업ㆍ공공부문 정규직이 과도하게 보호받는 반면 중소기업 비정규직은 너무 손쉽게 해고되는 현실을 바로잡지 못하면 이 같은 갈등은 지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사회적인 이슈로 부각되는 한진중공업, 쌍용자동차 등 정리해고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사례이고, 중소기업의 비정규직들에 대해 수시로 이뤄지는 정리해고는 정확한 실태조차 파악되지 않는다.

기업이 정보 공개하고 협의해야

전문가들은 기업의 생존을 위해 고용조정을 인정하되 남발하지 않도록 법 제도를 개선하고, 복지를 강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먼저 기업이 정리해고는 '최후의 수단'으로 선택하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사회적 압박을 가해야 한다. 가령 법원이 '회고회피 노력'을 판단할 때 무급휴직, 희망퇴직 등 노동자들의 희생만 볼 것이 아니라, 대주주의 자산출연, 자산매각, 감자노력 등 사용자측의 선행조치를 고려하도록 압박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투명한 경영정보를 바탕으로 노사 협의를 통해 정리해고를 실행하고, 전업을 유도하는 절차도 중요하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업이 노동자에게 투명하고 충분하게 정보를 제공하도록 의무화하고, 기업이 정리해고 대상자에 대해 생계비, 학자금 지원 등 보상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며 "경영자의 경영적 판단에 대해 외부에서 개입하지 않는 대신, 기업이 정리해고라는 선택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 해법"이라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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